[중국사]문화대혁명
- 최초 등록일
- 2003.05.16
- 최종 저작일
- 20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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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대학원 선배들한테 얻은 자료입니다...^^!
목차
1. 머리말
2. 문화대혁명의 배경
3. 문화혁명의 시작과 경위
4. 문화대혁명과 기존체제의 붕괴
5. 맺음말
본문내용
1. 머리말
1966년부터 3년여에 걸쳐 중국대륙을 미증유의 혼란과 무질서로 몰아 넣었던 문화대혁명은 아직도 많은 의문을 남기고 있는 사건이다. 그러나 문화대혁명은 중공 정치체제의 본질적 성격에 관한 다음의 몇가지 사실을 밝히게 한 사건이기도 했다. 첫째, 지도체제의 분열이 특히 1950년대부터 심각해 왔다는 사실을 밝혔다. 둘째, 문화대혁명은 정치적 권위의 화신이었던 공산당을 산산히 붕괴시킴으로서 지도자의 계승 내지 권력의 이양에 대한 합리적 절차의 결여에서 오는 일당독재국가의 일반적 취약성을 노정시켰다. 셋째, 문화대혁명 이전의 중공정치체제는 지도자와 대중사이의 명확한 분리로 특징지어졌으나, 문화대혁명은 이와 같은 사회체제가 '전체의사'의 실현에 부당한 것이었음을 스스로 드러내고, 대중과 분리된 지도체제가 공허한 것이라는 모택동의 경험적 이론을 다시 천명하였다.
"프롤레타리아 문화대혁명"은 중국 공산당의 역사나 세계의 다른 어느 공산주의 운동에서도 그 유례가 없었다. 수년 동안 전국의 지도부뿐만 아니라 기층까지 분열되고 혼란에 빠져 분쟁이 진행되는 속도와 형태는 사회적 여건과 지역에 따라 매우 달랐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계속 변화되었다. 이러한 다양성 때문에 중앙에서 기계적인 통제를 할 수는 없었으나 전반적인 통제력을 잃지는 않았다. 국가의 모든 정치 기구가 도전받는 위기에서 좌파가 문제시했던 것은 연안시대와 대약진 운동기에 윤곽이 잡혀진 중국 공산주의의 기본 실천, 즉 대중노선이었다.
문화대혁명 당시 새삼스럽게 강조되었던 모택동 사상의 우상숭배는 모택동이 구상하고 있던 가치구현에 대한 대중조작의 방법이었지만, 그것은 결국 지도자와 대중사이의 간격을 축소화시키려던 기도이었던 것이며 따라서 문화대혁명은 대중의 정치참여를 새로운 문제로서 등장하게 하였던 것이다.
참고 자료
최명, <문화혁명과 중공의 정치>, <<공삼민 박사 화갑기념논총>>, 1973
F.르 바르비에, J.셰노, J.벨라센, A-M.뒤보아, J.-F.올리비에, J.-P. 뻬만스,
N.왕/공기두 옮김, <중공 1949-1976>, 까치글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