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2. 유득공
3. 『발해고』의 편잔이유와 그 내용
4. 발해의 인식과정
5. 나가며
본문내용
1. 들어가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의 역사를 말할 때 단군-고구려 백제 신라-고려-조선으로 말한다. 이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발해를 우리의 역사로 생각하지 않는다. 신라역시 발해를 말갈계국가로 인식하였고, 고려부터 조선중기에 이르기 까지는 발해를 자국의 역사로 포함시키지 않고 주변국의 역사로 생각하였다. 하지만 조선 후기로 가면서 우리의 옛 북방영토에 대한 관심이 커져갔고, 이는 고구려와 발해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시점에서 유득공의 『발해고』가 완성된다. 본 발제에서는 유득공과 그가 쓴 『발해고』에 대해 알아보고, 더 나아가 역사 속에서 발해가 어떻게 인식되어왔는지를 사서(史書)를 통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중 략>
이 시기에는 발해를 우리의 역사로 바라보지 않았다. 그래서 역사서술에 있어서도 발해의 역사를 통일신라의 역사 속에서 부수적으로 다룬다는 특징이 드러난다. 이러한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는 역사서로는 『동국통감』이라고 할 수 있다. 『동국통감』은 조선전기의 대표적인 관찬사서로 기자조선-마한-신라로 흐름을 잡은 사서이다. 따라서 흐름에 벗어난 발해의 역사는 그저 주변국의 역사로써 다뤄진다. 이는 『동국통감』의 사론(史論)에서 찾아볼 수 있다.
거란이 발해의 신의를 저버린 것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발해를 위하여 보복을 한다고 하는가
(『동국통감』권 13)
라고 하여 고려 태조가 거란에게 행했던 정책을 비판하는 내용의 사론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이는 우리와 발해가 전혀 연관성이 없음을 주장하는 것이다. 이처럼 『동국통감』에서는 발해를 그저 고구려의 옛 땅을 차지한 주변국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이는 조선시대의 발해사 인식의 근간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조선전기에는 발해사를 다루기는 하였으나 자국의 역사로서가 아닌 주변국의 역사로서 다뤘다고 할 수 있다. 『동국통감』이 기준이 되어 후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사서가 이러한 인식을 따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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