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과 변명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징비록懲毖錄》
-불구가 된 정보전략이 주는 교훈
1592년 동아시아에 사변이 있었다. 약 7년에 걸친 이 전쟁은 세 가지 이름으로 불린다. 분로쿠 게이초의 역(役)이라는 일본식 명칭, 조일전쟁, 임진왜란이 그것이다. 이 사건은 굴욕적인 사대외교로 보장된 조선사회의 오랜 평화와 나태와 안일에 젖은 지배층의 생활습관이 수백 년 간 누적되어오다 마침내 중국 중심의 평화, 오늘날의 Pax-Americana에 가히 비견될만한 중화사대질서에 도전한 한 무사에 의해 일거에 깨어져 나간 것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자신의 주군인 오다 노부나가의 죽음을 갚는다는 명분하에 거병하여 그가 거의 다 일궈놓은 전국통일의 사업을 낚아챈 희대의 간웅이었다. 그의 꿈은 웅대했다. 그는 그 이전에도, 그리고 그 이후에도 꿈꾸지 못했던 대사업, 대륙진출을 자신의 생애 동안 실천에 옮겼다.
일본에서는 무지막지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 박차를 가하는 동안 조선은 연이은 당쟁으로 해소되기는커녕 더욱 격화된 정치적 문란이 계속되고 있었다. 내가 읽었던 징비록의 내용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한다.
조정에 첩보가 도착한다. 그 내용은 다름 아닌 ‘왜놈들이 변란을 도모’하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이에 조정에선 누가 가는 게 좋겠느냐를 두고 설전을 벌인다. 심지어는 ‘거짓’이다. ‘기우’다 하며 보낼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결국 조정은 정사正使와 부사副使를 결정해 일본에 파견한다. 정사 황윤길은 일본의 고압적이고 무례한 태도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장차 변란이 있을 것이라 예측했다. 반면 부사 김성일은 일본이 사신을 접대하는 태도에 대해 ‘호통’을 치면서 자국의 자존심을 바로 세워 ‘왜장’의 기를 꺾는 데에 사신활동의 대부분을 할애하였다. 그리고 돌아와서는 풍신수길의 상이 ‘쥐새끼’상이라며 감히 쳐들어올 엄두도 못낼 것이라 잘라 말했다. 그러나 이것은 결국 잘못된, 그리고 거짓된 보고였음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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