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우리 토박이말 어휘의 기록은 훈민정음 창제 반포로부터 시작한다. 훈민정음이 창제 반포되기 전에 우리 나라에도 토박이말 어휘의 기록이 없지 않았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는 말할 것도 없고, 금석문을 비롯하여 개인의 문집에 이르기까지 많은 기록들이 있다. 그러나, 이 기록들의 대부분의 어휘가 토박이말 어휘의 기록이 아닌 한자말이며, 또 토박이말 어휘의 기록이라 했자 그것은 극히 적을 뿐 아니라, 그것마저 한자를 빌어썼기 때문에, 그 문자로서의 체계가 잘 서지 않아서 지금 우리들은 이것을 기록 당시 발음한 말로 된 어휘로 돌이키기에 무척 곤란을 겪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 토박이말 어휘가 발음대로 기록되기 시작한 진정한 시기는 훈민정음 창제 반포 이후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때부터 토박이말 어휘가 그대로 정확히 기록되기 시작하였다. 다행히 세종대왕은 훈민정음 창제 반포로서 만족하지 않고 이의 적극적인 보급책을 세위 추진하였으므로 오늘날 우리가 <용비어천가>ㆍ<석보상절>ㆍ<월인천강지곡>ㆍ<동국정운>ㆍ<홍무정운역훈> 등 많은 한글 관계 문헌을 접하게 되어 중세국어 어휘를 대할 수 있음을 여러 가지 면에서 아주 다행한 일이라 하겠다.
중세국어의 어휘들은 근대ㆍ현대국어 어휘들과 비교해 보면, 형태적인 면에서는 많은 차이가 있어 왔지만 의미상에 있어서는 변화가 비교적 적었음을 발견할 수 있고, 또 두 가지 이상의 의미 값을 갖는 어휘는 매우 많았다. 중세국어의 어휘에 대한 특징을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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