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영화와 내셔널리즘' 감상문
- 최초 등록일
- 2013.09.06
- 최종 저작일
- 20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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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I. 서론
II. 무사도와 내셔널리즘
III. 무사도와 오리엔탈리즘
IV. 대동아공영권과 영화
V. 전후 영화의 모호한 내셔널리즘
VI. 소감 및 결론
본문내용
I. 서론
근대 내셔널리즘의 성립에 있어 인쇄 매체가 크게 기여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국민국가 구성원들에게 ‘친교’의 이미지를 심어주며 그들을 더욱 효과적으로 통합한 것은 인쇄매체보다 영화였다. 일제 강점기의 일본영화도 이러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국가는 영화를 국민을 동원하는 정치적 도구이자 심리적 무기로 이용했으며, 조선을 비롯한 각 식민지에서는 식민지 주민을 2등 국민으로 일제에 동화시키기 위한 영화 공작이 시행되었다.
저자는 우선 일본 내셔널리즘의 문화적 기원을 이해하기 위해 일본 고유의 도덕 사상인 무사도가 어떻게 군국주의에 이용되었는지 살펴보는 한편, 전후와 동시대의 일본 영화에 나타난 무사도 비판을 내셔널리즘에 대한 성찰이라는 측면에서 검토하였다. 일본 무사도가 서양에 왜곡되어 유포됨으로써 서양 영화의 오리엔탈리즘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살펴보았다. 그리고 대동아 공영권 영화를 만주국의 협화 영화, 조선의 내선일체 영화, 남방의 선전 영화, 대만의 황국신민화 영화로 나누어 분석하고, 쇼와 시대 세 여배우의 활동을 젠더론의 시각에서 분석한다. 반전과 전몰장병 진혼 사이를 오갔던 전후 일본의 전쟁 영화를 개략적으로 살펴보며, 아울러 일본 문화 개방 이후 일본 영화를 대하는 우리의 시각에 대한 문제 제기도 담았다.
<중 략>
한국전쟁으로 일본 경제는 부흥했고, 한국전쟁이 휴전으로 끝남으로써 전쟁의 위협이 사라지고 일본 영화가 전후 최고의 황금기를 맞이하자 저쟁은 추억으로 미화되기 시작했다. ‘버마의 하프’를 비롯한 고도 성장기 전쟁 영화의 공통적 문제점은 침략자인 일본군을 희생자로, 전쟁을 참혹한 기억이 아니라 감상적인 추억으로 상업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영화는 텔레비전이 본격 보급되면서 영화 관객수가 급감한 1960년대 후반부터 침체기를 걷기 시작했다. 영화 스튜디오들은 경영 악화로 매각되었고, 많은 영화인들이 회사를 떠났고, 남은 몇몇은 저예산 포르노 영화를 제작했다. 1990년대에 들어서 거품 경제가 무너지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일본은 장기간의 불경기를 겪고 있다. 이에 따라 영화 산업도 포르노 외에는 크게 침체되었다. 물론 1990년대 후반 일본 영화의 부활이 기대되는 때도 있었다. 1997년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하나비’가 베네치아 영화에에서 황금사자상을, 이마무라 쇼헤이의 ‘우나기’가 칸 영화제 그랑프리를, 가와세 나오미의 ‘주작’이 신인감독상을 수상했고 미야자기 하야오의 ‘모노노케 히메’가 기록적인 흥행 성적을 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