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좌익][신좌파운동][이탈리아 공산당][독일 사민당]좌파(좌익)와 신좌파운동, 좌파(좌익)와 이탈리아 공산당, 좌파(좌익) 독일 사민당(사회민주당), 좌파 브라질 노동자당
- 최초 등록일
- 2013.09.05
- 최종 저작일
- 2013.09
- 9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5,000원
목차
Ⅰ. 서론
Ⅱ. 좌파(좌익)와 신좌파운동
Ⅲ. 좌파(좌익)와 이탈리아 공산당
Ⅳ. 좌파(좌익)와 독일 사민당(사회민주당)
Ⅴ. 좌파(좌익)와 브라질 노동자당
Ⅵ. 결론
본문내용
Ⅰ. 서론
일제시대를 살았던 한국인들은 독립에 대한 나름의 주장과 소신, 방법 속에서 자신들이 처한 상황이나 주의 주장과는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민족운동을 전개했다. 그 가운데에는 좌파계열도 중요한 몫을 하고 있었다.
일제하 한국의 사회주의자들은 수용 초기에 강한 국제연대의식을 신봉했다. 이들은 프로레타리아 국제주의원칙이 민족해방을 해결하는 근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일제시대 한국민들이 ‘독립’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주의자들에게도 민족문제는 중요한 과제였다.
사회주의 수용 초기, 각종 사회주의 사상단체는 ‘무산대중 해방운동’이나 ‘신사회 건설’ 등의 문구로 강령과 선언을 장식했다. 이러한 선언적 내용의 이면에는 민족문제에 대한 고민이 내재되어 있었다. 그러한 고민이 때때로 ‘민족문제에 대한 강한 부정’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선행과제로 다루어지기도 했다.
이러한 사회주의자들의 인식과 궤를 같이하는 것은 바로 민족운동의 실천이다. 국내에서는 일제시대에 전개된 3대 민족운동 가운데 사회주의자와 전위당은 두 가지 운동(6.10만세운동, 광주학생운동)을 주도했다. 이 운동들은 모두 계획적인 준비 아래 ‘일본제국주의 타도’를 운동의 대상으로 명시하고 지속적인 운동을 전개했다. 또한 식민지 본국인 일본지역에서는 수천 명의 한인이 연일 생업을 제쳐두고 토오쿄오와 오사카 한복판에 모여 ‘식민지 해방’을 부르짖고 가두시위를 벌였다. 여기에 참가한 한인들은 대부분이 그날그날 막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일용노동자들이거나 공장노동자라 해도 해고의 위협에 놓인 사람들이었다. 또한 재일한인들은 총독폭압정치반대투쟁동맹을 결성해 지속적인 반대투쟁을 전개했다.
이와 같은 좌파계열의 민족운동은 다른 계열의 민족운동과 마찬가지로 1945년 8월 광복을 맞는 그날까지 끊임없이 전개되었다. 이러한 여러 계열에서 전개한 다양한 양상의 민족운동은 신국가건설의 모델을 제시하는 데에는 소홀히 하였으나 일제하 최대의 과제인 ‘민족해방’ 달성의 토대로 작용했다.
참고 자료
기획위원회(1999), 한국 사회와 좌파의 재정립 사민 복지, 산책자
박승호(2004), 저좌파 현대자본주의론의 비판적 재구성, 한울아카데미
베르나르 앙리 레비 저, 변광배 역(2008), 그럼에도 나는 좌파, 프로네시스
볼프강 아벤트로트 저, 신금호 역(2008), 1968년 이전의 유럽 좌파(1848-1968), 책벌레
윤소영(2008), 저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와 대안좌파, 공감
알렉스 캘리니코스, 최일붕 외 1명 역(2009), 저좌파의 재구성과 변혁 전략, 책갈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