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합천 문화유산][강릉 문화유산][제주도 문화유산][신라 문화유산][고려 문화유산]합천의 문화유산, 강릉의 문화유산, 제주도의 문화유산, 신라 문화유산, 고려 문화유산
- 최초 등록일
- 2013.09.04
- 최종 저작일
- 20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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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합천의 문화유산
Ⅱ. 강릉의 문화유산
1. 교산(較山) 시비
2. 보현사
1) 낭원대사 부도비
2) 낭원대사 부도
3. 한송사터
1) 한송사터
2) 한송사터 석불상
3) 한송사터 석조보살좌상
4. 칠사당
Ⅲ. 제주도의 문화유산
Ⅳ. 신라의 문화유산
Ⅴ. 고려의 문화유산
1. 고려의 역사편찬
2. 고려의 인쇄술
3. 고려의 예술
본문내용
합천 가야산 중턱에 자리한 해인사는 일주문 봉황루 해탈문 구광루를 지 나, 부처를 모신 대적광전(대웅전)이 일직선을 이루며 좌우에 당우(堂宇․ 큰 집과 작은 집)들이 자리한 정형의 미를 자랑한다. 팔만대장경은 다시 대적광전을 지나 사찰의 가장 높은 곳에서야 만날 수 있다. 대장경은 곧 법보사찰 해인사의 상징인 셈이다.
석축기단과 단아하면서도 장엄한 멋의 담으로 둘러쳐진 곳이 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장경각. 장경각은 부처의 가르침인 불경, 이를 인쇄하기 위한 목판을 보존하는 전각으로 대장전 혹은 판전 등으로도 불린다.
장경각은 모두 네 개의 건물로 이뤄져 있는데, 먼저 만나는 것이 아름다운 곡선미의 문틀을 가진 수다라장(修多羅藏)이고, 뒤에 있는 것이 법보전(法寶殿)이다. 또 수다라장과 법보전 사이 좌우에 소규모의 동․서 사간고가 있다.
판가에 따라 국보 32호인 고려대장경판(8만1천258매) 및 국보 제 206호인 고려각판(2275매)이 보존돼 있다. 고려대장경을 팔만대장경이라고 하는 이유는 그 판수가 팔만여장에 이른다는 것도 있지만, 가없이 많은 부처의 가르침을 팔만사천법문이라고 하는 데에서 유래된 것으로도 짐작된다. 고려시대 개별 사찰에서 간행된 고려각판과 달리, 고려대장경은 두 차례에 걸친 몽골족의 침입 속에서 온 백성이 나라를 구하겠다는 한 마음으로 국가사업으로 간행된 것. 먼저 간행된 구판대장경은 팔공산 부인사에 봉안됐지만 고종 19년인 1232년에 몽골군의 방화로 불타 버렸다. 그로부터 5년 뒤 다시 본격적으로 대장경 간행을 추진하여 16년 만에 결실을 본 것이 이곳에 보관된 고려대장경이다.
당초 자작나무로 알려진 경판에 쓰인 나무는 최근의 조사결과 산벚 나무와 돌배나무가 주종가 이루는 것으로 밝혀졌는데, 무려 5천200여만 자에 이르는 글자들이 마치 한 사람이 쓴 듯이 일정하고 또 잘못 쓰거나 빠뜨린 자가 없이 완벽한 장경을 이루고 있다. 이 같은 팔만대장경은 그러나 수다라장 등 팔만대장경을 보관한 4개의 판전(국보 52호)이 있기에 비로소 그 빛을 발하는 것이리라.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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