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18광주민주항쟁(5 18광주민중항쟁, 5 18광주민주화운동)국제화, 5 18광주민주항쟁(5 18광주민중항쟁, 5 18광주민주화운동)정당화, 5 18광주민주항쟁의 역사화,대중화
- 최초 등록일
- 2013.07.20
- 최종 저작일
- 20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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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5 18광주민주항쟁(5 18광주민중항쟁, 5 18광주민주화운동)의 국제화
Ⅲ. 5 18광주민주항쟁(5 18광주민중항쟁, 5 18광주민주화운동)의 조직화
Ⅳ. 5 18광주민주항쟁(5 18광주민중항쟁, 5 18광주민주화운동)의 정당화
Ⅴ. 5 18광주민주항쟁(5 18광주민중항쟁, 5 18광주민주화운동)의 민주화
Ⅵ. 5 18광주민주항쟁(5 18광주민중항쟁, 5 18광주민주화운동)의 역사화
Ⅶ. 5 18광주민주항쟁(5 18광주민중항쟁, 5 18광주민주화운동)의 도시화
Ⅷ. 5 18광주민주항쟁(5 18광주민중항쟁, 5 18광주민주화운동)의 대중화
Ⅸ.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서론
5·18 항쟁은 혁명으로 이어지는 데 실패했다. 그것은 오히려 가장 철저하게 반민족적인 군부집단의 권력 장악에 이용되었다. 수백, 수천의 뜨거운 피는 남도의 산하를 덮었다. 그리고 이 투쟁은 5공화국 정권에 의해 무자비하게 왜곡되고 은폐된 형태로 잔존하게 되었다.
그 결과 5·18은 실패하였는가 아니다. 결과는 오히려 그 반대가 되었다. 그것은 현 지배구조의 중심 고리를, 그리고 남한 권력의 비정통성을 노출시켰으며 운동의 민중적 확산과 역사적 정당성을 승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5·18 항쟁은 그 투쟁의 주체가 분단사회의 모순의 현 상태인 기층민중에서 찾아지며, 그 투쟁의 형식이 무장투쟁이라는 새로운 모습을 띠고 나타났다는 점에서 지금까지의 중산층 중심의, 합법적 공간에 안주해 왔던 일련의 민주화운동과는 선연히 구분되는 민중투쟁의 전환점이었다. 4·19혁명의 경우에는 항쟁 주체가 학생들의 선도적 역할을 매개로 전체 민중에로 확산되었으나 기층민중이 주력으로 서지 못하였고, 그 투쟁의 전술도 당시의 시대적 제약을 받아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회복을 위한 반독재 투쟁에 한정되고 있었다.
<중 략>
또한 같은 해 방송된 MBC 리포트, 광주는 치유되었는가 는 광주항쟁 희생자에 대한 최초 보상이 이루어진 90년 당시의 논쟁을 다루고 있다. 이 시기에는 희생자에 대해 최초의 보상이 이루어졌는데, 이에 따라 “광주의 한, 아들의 죽음이 돈으로 흥정되고 있다”는 비판이 있었다. 따라서 이 텍스트는 광주문제의 해결이 정치적인 차원을 넘어 아픔을 같이 하고 나눔으로써 화해와 단결을 이룩해야 한다는 내용을 전달했다.
1996년 5월에 KBS에서 방송한 다큐멘터리 망월동 은 이 시기의 변화된 양상을 잘 반영한다. 이 다큐멘터리는 이전 다큐멘터리들과는 달리 당시 사건의 영상자료는 최대한 줄이는 대신 2개월 동안 망월동을 찾은 참배객들과 유족들의 인터뷰를 담고 있다. 여기에서는 5 18뿐만 아니라 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을 함께 다룸으로써, 망월동의 의미를 투쟁의 구심점으로 부여한다. 그래서 망월동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을, 여전히 “산 자”의 문제임을 보여줌으로써 “아직 광주의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는 점을 역설한다.
참고 자료
김재균, 5.18과 한국정치, 에코미디어, 2010
마나베 유코 저, 김영택 역, 광주항쟁으로 읽는 현대한국, 사회문화원, 2001
정동섭, 5.18 광주사태, 풀빛, 1995
최영태, 5.18 그리고 역사, 길, 2008
학술단체협의회, 5.18은 끝났는가, 푸른숲, 1999
황석영, 5.18 그 삶과 죽음의 기록, 풀빛,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