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남선에 대한 조사
- 최초 등록일
- 2013.06.28
- 최종 저작일
- 20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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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최남선의 생애
2. 민족운동가 최남선
3. 친일파 최남선
4. 해방 이후의 최남선
Ⅲ. 결론
Ⅳ. 참고문헌
본문내용
1. 최남선의 생애
1) 생애 초기
어려서는 한학을 배웠으며, 1902년 경성학당에서 일본어를 배웠다. 1904년 10월 대한제국 황실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국비 유학생 신분으로 일본에 건너갔다. 그 해 11월 도쿄 부립제일중학교에 입학했으나 얼마못가 12월에 중퇴했다. 1906년에 다시 일본 유학을 떠나 4월 와세다 대학 고등사범학부 지리역사과에 입학하지만, 역시 3개월간 다니다 동맹 휴학으로 중퇴하였다. 이어 이광수 등 유학생과 사귀면서 러시아 문학 작품을 탐독하였다. 1906년 7월 유학생 회보인 `대한 흥학회보`편찬회를 맡아 편집인으로 활동했다. 편집 활동하면서 새로운 형식의 시(신체시)와 시조를 발표하였다.
2) 귀국이후 행보
1907년 5월, 귀국한 뒤 우리 민족의 시대적 각성을 위한 신문화 운동을 일으키기 위해 인쇄 시설을 구입하여 1908년 신문관을 창설하였다. 여기서 `대한역사`, `대한지지`, `외국지지` 등 중요한 책을 출판하였으며, 새 시대의 주인공을 위하여 1908년 최초의 종합 잡지인 `소년`을 발행하였다. 그는 이 잡지에 〈해에게서 소년에게〉라는 최초의 신체시를 발표하였으며, 1910년 3월에는 도산 안창호와 함께 ‘청년 학우회’를 설립하여 청년학우회 평사원 겸 변론과장을 지내면서 청년학우회의 노래를 짓는 등 청소년 지도 운동에 앞장섰다.
같은 해 10월 그는 조선의 귀중한 옛 책들을 다시 간행하였으며, 민족 문화를 널리 퍼뜨리기 위한 국가적인 사업을 일으켜 조선광문회를 설립해 조선고서를 발간하는 한편 조선어 사전 편찬 계획을 세우고 구상했었다. 조선어 사전 편찬계획 세우는 그 과정에서 당시 `동국통감`, `열하일기` 등을 비롯한 20여 종의 고전이 간행되었다.
<중 략>
제국주의는 물질적정신적으로 식민지를 열등한 존재로 정의한다. 식민지의 지식인들은 자신들의 가치를 드높임으로써 저항의 토대를 마련하였고, 민족적 정체성을 확립시켰다. 1910년 이후 식민지로 전락한 조선에서 최남선을 비롯한 지식인들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식민지 사회라는 배경에서 지식인들은 민족자결주의, 사회주의, 민족주의와 같은 다양한 시대적 이데올로기들을 활용 해 경쟁하고 협력했다. 그리고 나름의 저항활동을 통하여 제국주의에 대항하였다.
참고 자료
류시현, 최남선평전, 한겨레출판(주), 2011.5.11
류시현, 최남선 연구, 역사비평사, 2009. 7.10
위키피디아, http://www.wikipedi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