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용주사를 답사한 뒤 발걸음을 융·건릉으로 돌렸다. 다행히도 날씨는 선선했고 비는 오지 않았다. 버스를 타고 2분정도 달려 내리니 바로 앞에 융·건릉이 보였다. 융건릉 또한 용주사와 마찬가지로 입장료를 내야 들어갈 수 있었다.(입장료는 성인 기준 1인당 천원) 우리는 입장료를 낸 뒤 입구로 들어갔다. 입구에는 세계유산 조선 왕릉에 대한 비석이 세워져 있었다.
비석을 본 후 발걸음을 이어나갔다. 몇 걸음 가지 않고 앞에 표지판이 보였다. 왼쪽은 정조와 그의 비인 효의왕후의 무덤인 건릉, 오른쪽은 정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와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의 무덤인 융릉이 있었다. 우리는 융릉부터 답사하기로 했다.
<중 략>
건릉은 정조의 사후에 처음 능묘를 썼던 현륭원 동쪽 해좌지원에서 22년 뒤 효의왕후의 능을 쓸 때 서쪽 자좌지원으로 이장, 정조와 그 왕후를 이장한 동릉이실의 능호임을 알 수 있다. 건릉에는 앞의 융릉과 같이 병풍석이 돌려지지 않고 난간석만 둘린 것이 다를 뿐 그 밖의 모든 상설은 융릉의 예를 따랐다. 그리하여 합부릉 이지만 혼유석 1좌만 설치했고, 융릉식의 장명등을 두고 있다. 문인석과 무인석의 조각은 극히 사실적이며 안정감이 있는 풍모의 문관은 금관조복을 입고 있다.
건릉은 융릉에 비해 묘제와 석물의 조각 수법이 뒤떨어진다는 후세의 평가도 있다. 그러나 건릉은 융릉과 함께 정조시대에 난숙했던 문운 융성의 기운과 양식을 그대로 반영한 것으로, 19세기의 왕릉석물제도의 새로운 모범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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