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문학의이견정리
- 최초 등록일
- 2013.05.04
- 최종 저작일
- 20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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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본론
① 조동일의 『 한국문학통사 』 조동일(1995). 「한국문학통사」. 지식산업사
② 조윤제의 『 한국문학사 』 조윤제(1987). 「한국문학사」. 탐구당.
③ 장덕순의 『 한국 문학사 』 장덕순(2004),「한국문학사」,동화문화사.
④ 김준영의 『 한국고전문학사 』 김준영(1982) 「한국고전문학사」,형설출판사.
Ⅲ.결론
본문내용
Ⅰ. 서론
고려문학의 평가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이견이 존재한다.
한문이 도입되면서 광종때 과거제가 건의되게 된다. 이에 따라 중국의 운문과 산문으로 시험을 보는 과거제도가 성행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한자가 발달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한자의 도입에 따라 학자들 간에 이견이 발생하게 되는데, 한자의 유입으로 유동문학이 정착문학이 되었다는 장점이 있다. 즉, 구비로 전승되던 문학들이 기록문학으로 바뀌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이를 통해 문화발달이 가속화되었고, 한자를 통한 과거제를 통해 등용된 신흥사대부세력들에 의하여 새로운 형식이라 할 수 있는 경기체가와 속요가 형성되게 되었다. 이와 같은 근거를 통해 일부 학자들은 고려시대의 문학을 문학발달의 과도기 또는 모색기라 칭한다.
반면에 일부 학자들은 한자의 도입으로 서민들은 한자를 접하기 힘들었고, 이로 인해 상층문화와 하층문화가 분리되었다는 점과 한문의 발달로 인한 향찰의 발달 저지와 함께 중국문학에 종속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는 점에서 고려시대의 문학을 우리국문학의 쇠퇴기라고 칭하기도 한다.
<중 략>
김준영은 고려시기에 잦았던 국난과 전란이 문학의 발달을 방해하는 면도 있지만 전적으로 침해하는 원인이 된 것 만은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무신의 난은 결과적으로 두관이 집권하게 됨으로써 문관들은 정계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그것은 도리어 그들에게 시간 여유를 주어 문학 생활의 동기가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한문의 도입으로 인한 한문학의 융성은 고유 문학의 활발한 발전을 침해했지만 고유 문학은 고유문학대로 꾸준히 지속되어 왔으니 통일 신라 때에 있어 지식층의 창작 시이기도했던 향가가 고려 중엽까지 유지되었고, 거기에서 시조형의 발생을 보았으며, 민요계통의 속가는 여전히 서민층에 성행함과 동시에 지식층에 있어서도 가창으로서는 즐겼던 것이고, 또 그러한 속가형을 취하여 시가를 쓰기도 하였다는 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