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세계대전의 촉발, 제1차세계대전의 원인, 제1차세계대전의 과정, 제1차세계대전의 영토분쟁, 제1차세계대전의 러시아혁명, 제1차세계대전의 중국참전, 제1차세계대전의 독일책임
- 최초 등록일
- 2013.04.27
- 최종 저작일
- 20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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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개요
Ⅱ. 제1차세계대전의 촉발
Ⅲ. 제1차세계대전의 원인
Ⅳ. 제1차세계대전의 과정
1. 1차세계대전의 개시
2. 확대되는 전국
3. 전시체제
4. 미국의 참전
5. 러시아 혁명
6. 독일의 패전
Ⅴ. 제1차세계대전의 영토분쟁
Ⅵ. 제1차세계대전의 러시아혁명
1. 독일의 계산
2. 브레스트-리토스크조약
Ⅶ. 제1차세계대전의 중국참전
1. 중국에 대한 참전 권유
2. 일본의 비밀 교섭
3. 중국 참전의 의의
Ⅷ. 제1차세계대전의 독일책임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개요
1914년 7월 제 1차 세계대전이 제국주의간의 이해상충으로 발발하자 두 적대진영은 동구국가들을 서로 자기편에 넣으려고 하였다. 동구권 국가들 또한 전시에 강대국에 연합함으로써 그들의 국가이익을 조정하고자 전쟁에 개입하였다. 알바니아는 제 1차 세계대전동안 주변국들의 침략의 대상이 되어 여러 민족들에게 부분적으로 점령당했으나 1차 대전 후 주권국가임이 확인되었다. 불가리아가 제 2차 발칸전쟁으로 잃어버린 마케도니아를 세르비아로부터 탈환하기 위해 동맹측인 독일?오스트리아편에 가담하였으나 독일?오스트리아의 패전으로 불가리아는 서부 트라체 지방을 그리스에 빼앗기고 서방변경의 일부를 유고슬라비아에 빼앗기게 되었다. 꾸준히 민족운동을 계속해온 체코슬로바키아는 전쟁이 발발하면서 오스트리아에 동원되어 전쟁에 가담해야 했다. 헝가리는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에서의 위치 때문에 오스트리아 편에서 참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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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중요한 것은 이러한 양극체제가 경직되어 유연성을 상실한 나머지 위기를 협상으로 해결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는 점이다. 이러한 현상은 동맹의 주체들이 정해져 움직일 수 없으며 그 상태가 영속적이 될 때 나타난다. 대전 전이 이 상황은 우선 왕가 간의 합종, 연횡이 주를 이루던 이전과는 달리 민족주의가 동맹체제에 반영되어 있었다는 점으로 설명될 수 있다. 또한 국내적으로 베트만 홀베크(Bethmann-Hollweg)와 같은 문관들이 티르피츠(A.Tirpitz)로 대표되는 호전적 군부를 통제할 수 없었던 독일이나 대중들의 눈치를 봐야 했던 영국의 상황도 국가간 유연한 해결을 불가능하게 하였다. 보다 중요하게, 점차 다루어져야 할 문제들이 정부들의 통제를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는, 비록 자본주의 자체가 대전의 근원이라든가 자본가들이 전쟁을 일으켰다는 소련의 주장은 물리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속성상 자국 경제의 끊임없는 팽창을 요구하였으며, 비스마르크(O.E.L.Bismarck)의 절제된 야심과는 달리 빌헬름(Whilhelm) 2세나 티르피츠(A.Tirpitz)의 세계정치에의 야망은 영국에 위협을 가하여 협상을 어렵게 하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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