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적 신도의 탄생과 일본 제국주의
- 최초 등록일
- 2013.04.25
- 최종 저작일
- 20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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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들어가는 말
Ⅱ. 신도의 정의와 역사적 배경
Ⅲ. 근대적 신도의 탄생
Ⅳ. 신도와 제국주의의 결합
Ⅴ. 맺는 말
본문내용
Ⅰ. 들어가는 말
“일본인은 태어났을 때는 신사에서 축원하고, 결혼할 때는 교회에서 예식을 하며, 죽었을
때는 사찰에서 제를 올린다.”
일본인의 종교관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말이다. 이처럼 일본인에게 종교에 대한 관념은 매
우 희박하다.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신앙의 대상으로 종교가 있는가?’라는 설문조사를 했을
때에도 90% 이상의 조사자들이 스스로를 ‘종교가 없다’라고 답하였다고 한다. 일본인에게
종교란 의식의 차원에서 다루어지는 성질의 것은 아닌 듯하다.
그런데 일본인들에게는 이와 모순되는 모습도 보인다. 바로 명절 혹은 연말․연초에는 반
드시 신사를 참배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도쿄의 높은 빌딩 건물 안에도 신사가 마련되어 있
다. 일본인들이 일상을 영위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신사가 있는 것이다. 자신들에게 신앙이
없다고 답했던 대다수의 일본인들은 이렇듯 신도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신도는 조선을 병탄한 후 총독부의 동화 정책에 의해 한반도에 유입되기도 했다.
한반도에 유입된 신도에 대해 총독부는 각별한 관심과 특혜를 부여했다.
< 중 략 >
Ⅴ. 맺는 말
일본의 근대적 국민신도는 이전의 민간신도를 교묘하게 흡수하여 ‘만세일계의 전통’으로
위장한 기만적인 종교이다. 처음 일본 정부는 국민신도를 서구의 기독교와 같이 근대국민의
일상을 의식적․무의식적으로 통제하는 도구로 인식함으로써 큰 반발을 불러일으키기도 하
였다. 하지만 신도 비종교론을 통해 신도를 초월적 종교로 상정하고 근대적 학교 교육, 일
본에 유입된 각 종교에 신도를 삽입함으로써 근대적 사상 통제의 기구를 확립하게 된다.
신도는 천황에 대한 절대적 숭배와 천황의 지배를 전 세계로 확산시켜야 한다는 독선적인
사상 체계를 가지고 있다. 이는 근대 제국주의 팽창 정책과 맞물려 일본의 침략 전쟁을 옹
호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일본 제국주의 시절 야스쿠니 신사를 중심으로 ‘천황을 위한 성
전’을 적극 옹호하고 장려함으로써 신도의 군국주의적 폐단은 절정에 달하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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