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개요
무인집권시대는 유학이 퇴조하고 유·불·도의 삼교(三敎)를 절충하는 사상풍조가 등장하였다. 이는 지식인의 사상 경향이 종교적이고 신비주의적으로 흐르게 된 것을 의미하며, 이에 따라 역사의식도 종교적 · 신비주의적 경향을 띄게 되었다. 최충헌의 사랑을 받은 이규보의 동명황편은 이 시기 집권층 지식인의 역사의식을 상징적으로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민간에 떠도는 동명왕의 건국설화를 5언시체로 재구성한 것으로 그 형식은 유교사서의 체제와 거리가 멀다. 시(詩)의 형식인 만큼 내용이 풍부할 수도 없고 증거자료의 수집이나 인용도 있지 않다. 따라서 사서로서의 수준은 삼국사기에 비할 것이 못되지만 동명황 설화를 귀환(鬼幻)의 세계에서 성신(聖神)의 세계로 끌어올리고, 우리나라가 성인(聖人)의 나라임을 자부한 그 기개는 큰 의미를 갖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규보가 이 시를 쓴 목적은 당시 고려에 대하여 군신관계를 가요 해오던 금(金)에 대한 자존심의 선언이며, 그 자존심의 근거를 천손(天孫)의 후예가 세운 고구려정신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중 략>
“우린 바로 저 적거원수 밑에 있었습니다. 그의 용병술을 좀 알지요. 두려워 할 것 없습니다. 열 배가 넘는 적과 정면으로 싸우면 제 아무리 용맹한 장수가 거느리는 정예군이라 할지라도 백전백패합니다. 기계(奇計)로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김통정은 곧 이런 위험이 닥칠 것을 예상했는지 자기가 가지고 있던 계책 가운데 하나를 재빠르게 실행에 옮기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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