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전쟁시대][항일전쟁][전쟁]항일전쟁시대의 배경, 항일전쟁시대의 전개, 항일전쟁시대의 지방유생, 항일전쟁시대의 정치사, 항일전쟁시대의 종교정책, 항일전쟁시대 관련 시사점 분석
- 최초 등록일
- 2013.04.01
- 최종 저작일
- 20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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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항일전쟁시대의 배경
1. 전기(前期) 의병
2. 후기 의병
Ⅲ. 항일전쟁시대의 전개
Ⅳ. 항일전쟁시대의 지방유생
1. 의병의 독립군으로의 전환
2. 독립의군부의 조직과 활동
Ⅴ. 항일전쟁시대의 정치사
Ⅵ. 항일전쟁시대의 종교정책
1. 단군대종교 - 철저탄압, 박멸정책
2. 유교 - 극단적 비방, 철저탄압
3. 동학천도교 - 탄압 및 회유, 이이제이(이간) 정책
4. 개신교 - 탄압 및 무시, 이이제이(이간) 정책
Ⅶ. 결론 및 시사점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서론
3·1운동이 3월 중순 이후 만세시위가 급속히 확대되면서 투쟁 양상도 발전해 갔다. 만세시위를 조직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비밀결사와 결사대가 조직되었으며, 이들 비밀결사는 보다 구체적인 독립운동의 전개를 위하여 전국 각처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났다. 그리하여 3?1운동 직후 생겨난 비밀결사는 확인 가능한 것만도 100여 개가 넘을 만큼 폭발적인 추세를 보이고 있었다. 이러한 현상은 양적인 기준에서 볼 때 독립운동의 전시기를 통틀어 절정을 이루는 것이었다.
3·1운동의 발전 양상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이들 비밀결사는 대부분이 임시정부 지원을 표방하고 있었다. 3·1운동의 열기를 모아 전국 규모로 조직을 세워 갔던 이들 비밀결사는 임시정부 지원을 내세우며 각 단체간의 통합과 연합을 모색하면서 독립운동의 민족적 기반을 넓혀 갔다. 대한독립애국단·조선민족대동단·대한민국청년외교단·대한민국애국부인회·대한국민회 등은 이 무렵 국내독립운동단체의 대표적인 것들로 서울과 평양 등의 대도시에 본부를 두고 전국 각처로 조직을 확대해 갔다. 대한국민회의
<중 략>
Ⅳ. 항일전쟁시대의 지방유생
1. 의병의 독립군으로의 전환
1909년 9-10월 일본군의 소위 남한대토벌작전으로 호남의병이 강제 해체되고 1910년 국망 후 일본군의 조직적인 ‘토벌’작전으로 국내에서의 의병의 활동은 크게 위축되었다. 그리고 유인석을 비롯한 제천의병, 이진룡, 우병렬을 비롯한 평산의병이 북상하였으며, 홍범도를 중심한 산포수의병과 이남기를 중심한 경성의병이 연해주로 북상하는 등 다수의 의병은 국외로 망명하여 만주, 연해주 일대에서 독립군을 편성하여 대일항전을 준비하였다.
그러나 1910년대 초반에 무단통치하에서도 의병의 활동은 남부지역은 소백산과 지리산을 끼고, 북부지역은 황해도 일대에서 간헐적으로 전개되었다. 대표적인 의병으로는 경상도의 김상태 의병, 전라도의 이석용 의병, 황해도의 이진룡의병의 잔여세력들이 있었다.
<중 략>
Ⅶ. 결론 및 시사점
항일전쟁 시대의 역사는 많은 것이 거꾸로 되어 있다. 오늘날에 있어서도 일본인들이 만들어 놓은 것의 가치판단은 거꾸로 해석해야 옳은 것이 많다. 우리는 흘러간 옛 얘기만 그런 줄로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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