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역사][일본사]일본역사(일본사)와 고대시대, 일본역사(일본사)와 나라시대, 일본역사(일본사)와 무로마치시대, 일본역사(일본사)와 근세시대, 일본역사(일본사)와 에도막부시대
- 최초 등록일
- 2013.03.30
- 최종 저작일
- 20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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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개요
Ⅱ. 일본역사(일본사)와 고대시대
Ⅲ. 일본역사(일본사)와 나라시대
Ⅳ. 일본역사(일본사)와 무로마치시대
1. 산업의 발달
2. 상업의 발달
3. 무로마찌 문화
4. 무로마치시대의 문화
Ⅴ. 일본역사(일본사)와 근세시대
Ⅵ. 일본역사(일본사)와 에도막부시대
1. 막번체제
2. 막번체제의 정비 및 확립
3. 참근교대 - 다이묘의 적절한 통제 수단이 된 참근교대 제도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개요
서구로부터 수용된 일본의 인종주의 또는 인종개선학의 논리는 19세기 말 이후, 그리고 일제하의 한국사회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식민지하의 한국사회에서 인종론은 일제의 식민지지배론에 적용되고 있다. 서구의 국가들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일본에서도 해외 식민지개척에 앞서서 식민학이 유행하면서 식민학자들에 의한 식민사 연구와 식민지개척의 필요성에 대한 이론적 작업이 선행되고 있다. 이 이론적 선행작업에 먼저 인종론이 이용되고 있다.
일본의 식민학 창시자로 알려지고 있는 니토베는 “인종간의 우열은 개인이 아니라 인종전체를 기준으로 보아야 한다”는 관점에서 식민의 개념을 “대체로 우등한 인종이 열등한 인종의 토지를 취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같은 관점을 보여주고 있는 平元兵吾는 식민학 연구에서 “식민과 인종간의 관계가 제일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즉 “인종세력의 우열여하에 의해서 식민이 이루어지고 있음은 많은 역사적 사실에서 증거를 찾을 수 있다”는 입장에서 인종간의 투쟁이 구체적으로 나타나게 된 현상이 바로 식민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중 략>
막번체제는 장군(쇼군) 밑에 각 영주격의 다이묘들이 각자의 번뇌에서는 독자적인 정치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막부는 무가제법도를 공표함으로써 다이묘들의 세력확장과 막부의 도전을 막아 완전히 다이묘들을 막부아래 두고자 했다. 무가제법도란 다이묘들이 지켜야 할 여러 가지 규정이었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새로운 성을 축조해서는 안 되고 파괴된 곳을 고칠 때에도 반드시 막부의 허락을 받아야 하며 또 결혼을 할 경우 막부의 양해 없이 다이묘끼리 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 등이 있었다.
그 외에도 개인적 해동, 혼인, 의상의 규제와 에도에서 쇼군을 시중들 일, 인질의 제공, 대양 항해용 선박 건조의 금지, 기독교의 금지 등 세부적인 규정과, 쇼균의 법령을 나라의 최고 법으로 인정할 것을 약속하는 조항으로 끝을 맺고 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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