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신분제
- 최초 등록일
- 2013.03.29
- 최종 저작일
- 20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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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서론
Ⅱ.양반층의 증가와 분화
Ⅲ.중간신분층의 향상과 분화
Ⅳ.서민층의 성장
Ⅴ.노비신분층의 동향과 변화
Ⅵ.맺음말
본문내용
조선후기 신분제의 동요란 간단히 조선 후기에 들어 봉건적 신분체제가 무너지면서 신분 사이의 이동이 활발해지고 전통적인 신분구별이 약화되어가는 현상을 말한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수차례에 걸친 전란으로 조선후기 사회변화는 신분구조에 큰 영향을 주어 조선초기에 설정된 신분법제는 실제상에 있어서는 거의 무의미해지고 있었다. 18, 19세기로 접어들면서 사회경제적인 변화와 발전은 신분구조의 변동을 가속화시켰고, 호적과 양안을 자료로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조선 후기 신분제 변동의 양상은 크게 양반층의 증가와 노비의 감소로 나타난다. 여기서는 신분변동의 전개양상을 양반과 중인, 서민, 노비계층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중 략>
국가는 경작지 확보를 위해 농지의 개간에 신분적 제한을 두지 않았고, 일정한 기간 동안 면세하고 개간자의 소유지로 인정하는 등의 법적 조치를 취했다. 개간에 참여한 소농민이나 상인, 부호들은 서민지주로 성장할 수 있었다. 토지확보에 못지않게 농업기술의 발달(농법, 시비법, 농기구 발달)과 상업적 농업의 발전, 경영방식의 변화 등을 통하여 농민들은 부를 축적할 수 있게 되었다. 관장제 수공업체제가 무너지고 장인의 부역제가 점차 고용제로 바뀌게 되면서 공장들에게 사적 제조와 판매가 허락되었다. 자유수공업자로 전환하면서 이들은 사익을 축적해갔으며, 선대제적 수공업조직
<중 략>
신분적 차이에서 오는 양반과 다른 신분의 차별대우는 조선 후대에 올수록 극심해졌다. 이에 역이 천하여 신분상승을 꿈꾸든, 역이 과중하여 신분상승을 꿈꾸든 간에 많은 중인, 서민, 노비들이 현재의 신분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소위 부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가장 먼저 자신보다 높은 신분으로 이동했으며, 양반도 너무 가난하면 자신의 신분을 버리고 전호 등으로 전락하기도 했다. 이처럼 평등 사회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던 것은 정부가 나서서 단행한 노비 해방이 큰 원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그 뒤 고종 23년(1886)에 노비의 신분 세습법이 폐지되고, 1894년 갑오개혁으로 사노비까지 법제적으로 해방되는 기반이 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