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전기 대외관계 발제문
- 최초 등록일
- 2013.02.13
- 최종 저작일
- 20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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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제 1장 명과의 관계
1. 15·16세기 동아시아의 국제질서
2. 국초의 대명관계
3. 사절의 파견
4. 대명관계의 변화
Ⅱ. 제 2장 여진과의 관계
1. 여진족의 내력
2. 여진을 둘러싼 명과의 갈등
3. 대여진정책
본문내용
Ⅰ. 서론
조선은 건국 직후부터 명과 친선 관계를 유지하여 정권과 국가의 안전을 보장받고, 중국 이외의 주변 민족과는 교린 정책을 취하였다. 이러한 외교정책은 상대 국가가 달라지더라도 조선 전 시기에 걸쳐 일관되게 추진된 외교 정책이었다.
사대정책은 본래 동아시아의 보편적인 국제 관계를 표시하는 것이었고, 선진 강대국인 중국의 주변 제국이 명분상 중국의 연호를 쓰고 중국과 조공관계를 맺는 것을 말하며, 서로 독립성이 인정된 위에서 이루어진 것으로서 예속 관계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교린이란 이웃나라와 화평하게 지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교린국은 대등한 외교의례를 나누는 국가이다. 조선은 교린정책으로 일본과 여진에 대한 평화적인 회유 정책과 강경책을 써서 평화관계를 유지하였다. 이러한 조선 전기의 외교정책을 통하여 15·16세기 동아시아의 국제질서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자.
Ⅱ. 제 1장 명과의 관계
1. 15·16세기 동아시아의 국제질서
중국에서 명이 건국된 1368년 이후 원 중심의 동아시아의 국제질서는 차츰 명 중심으로 재편되어 갔다. 명은 중국 대륙 내부의 여러 세력을 통합한 데 이어 고비사막 북쪽으로 쫓겨나 있던 북원마저 멸망시킴으로써(1391) 동아시아 중심 국가의 위치를 확립하였다. 이어 조선이 건국되고, 일본에서도 남북조 시대가 끝나고 무로마치 막부 시대가 시작되었다(1392) 이처럼 세 나라가 비슷한 시기에 큰 변화를 겪은 뒤 국제 정세는 차츰 안정을 이루며 새 질서를 형성해 갔다.
명은 건국 이후 조공제도의 재확립을 목적으로 새 국제질서의 형성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새 국제질서의 골격은 이미 14세기 후반에 명이 중심이 되어 동북아시아 및 동남아시아의 여러 국가를 포괄하는 형태로 갖추어졌으나, 명의 정세 변동 및 조선의 건국과 일본의 새 막부성립 등과 관련하여 15세기 초엽까지도 다소 진통을 겪었다. 그 후 명과 조선 및 명과 일본의 관계가 정상화됨으로써 명 중심의 동아시아 세계질서가 갖추어져, 약 2세기 동안 큰 동요 없이 유지되었다. 동아시아의 여러 국가가 모두 명에게 사대를 하는 한편, 명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 서로는 대등한 위상에서 교린관계를 맺었다.
참고 자료
고려대학교 한국사연구실, 「한국사의 재조명」, 고려대학교 출판부, 2002
김당택, 「한국 대외교류의 역사」, 일조각, 2009
이기구,「풀어쓴 중국역사탐험➀ 전설의 하(夏)왕조」, 역사문화연구회,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