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리형진 전현신상부
- 최초 등록일
- 2013.01.25
- 최종 저작일
- 20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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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상리형진 전현신상부 중국의 여러 신하와 왕의 관상 한문 및 한글번역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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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전현신상부
近今 近今 [jinjn]:1) 현재 2) 지금
之形, 憑往古 往古: 지나간 옛날
之相, 參許負之元機, 得呂祖之秘訣.
췌근금지형 빙왕고지상 참허부지원기 득여조지비결
근래의 형체를 살펴보고 지나간 고대의 관상에 의지하며 허부의 원기를 참고하며 여조의 비결을 얻었다.
劉先主垂手過膝, 有三分天下之徵;
유선주수수과슬 유삼분천하지징
선주 유비의 드리운 손이 무릎을 지나가니 천하를 3으로 나눠가질 징조가 있었다.
漢高祖大度 大度 [dadu]:1) 도량이 크다 2) 너그럽다 3) 아량 있다
美 (코밑수염 자; -총15획; z,c)
, 開四百餘年之祚;
한고조대도미자 개사백여년지조
한나라 고조 유방은 너그럽고 아름다운 코밑수염이 있어서 400여년의 한나라를 열었다.
秦檜秦檜, 1090년 ~ 1155년는 남송의 재상. 자는 회지(會之). 현재의 난징인 강녕(江寧) 출신. 금나라와의 외교 정책에 있어 화평을 진행하고, 강화를 주창하였지만, 그 과정에서 주전파인 악비와 한세충 같은 군벌을 탄압하고, 그 후도 스스로의 권력 유지를 위해 공포정치를 동반했기 때문에, 후세에 매국노(漢奸)로 지탄받았다. 진회는 사후, 매국노라는 오명을 뒤집어 썼다. 당시의 상황에서 군사력이 약한 남송의 현실적인 처세였다는 판단에도 불구하고, 악비를 숙청하여 처형시킨 행위가 후세에 엄청난 비난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진회 자신도 악비를 죽인 것에 대하여는 상당히 번민하였지만 아내의 재촉을 받고 죽일 것을 결의하였다고 한다. 그 때문에 악비를 죽인 진회 부부는 아직도 악왕묘에 포박된 채로 꿇어 앉아서 전시되고 있다. 옛날 중국에는 이 상에 침을 뱉거나 차는 습관이 있었다.
<중 략>
난정이만 범중엄상업감가
콧볼인 난대와 정위가 이미 가득차니 범중엄의 재상의 업을 잘했다고 할만하다.
廉頗 廉頗: 춘추전국시대 조나라의 명장이다. 노년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젊은 장군에 못지 않은 완력을 보여 삼국지의 황충과 함께 중국의 대표적인 노익장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염파는 한 끼에 밥 한 말, 고기 열 근을 먹었으며 갑옷을 입고 말에 올라 아직도 쓸모 있음을 보였다(一飯斗米肉十斤, 被甲上馬, 以示常可用)고 한다. 나이 80이 넘어서도 그의 용맹이 두려워 제후들이 조나라를 넘보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天雙眼尾, 襄王當胸五花紋.
염파수천쌍안미 양왕당흉오화문
염파장군은 하늘에 두 눈썹꼬리를 드리우며 양왕은 가슴에 다섯가지 꽃 무늬가 있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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