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을 지키기 위한 노력
- 최초 등록일
- 2012.12.25
- 최종 저작일
- 2012.04
- 7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한글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어떤것이 있었는지와 함게 현대에 들어 어떤 노력을 하는지 상세하게 조사한 내용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세계의 언어의 수는 대체로 4,000개에서 5,000개 정도이다. 적게 잡으면 3000개, 많이 잡을 때는 10,000개까지도 잡는다. 적어도 3,000개의 언어는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사용자가 100만명 이상 되는 언어는 138개어에 불과하며, 사용자가 10만 이상인 언어로 따져도 396개어 밖에 되지 않는다.
그중 한국어는 사용 인구가 많기로 세계에서 13위에서 15위쯤에 해당하며 이는 이탈리아어와 비슷한 수준이다. 이 점에는 한국은 결코 작은 나라가 아니며, 한국어는 충분히 힘을 갖춘 언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국어는 이제 한반도 안에 갇히어 있는 언어가 아니고, 해외 동포들에서도 널리 쓰이고 있을 뿐 아니라 우리말을 익혀 가는 외국인의 수도 날로 증가해가며 우리민족의 자랑거리 중 하나로 거듭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한글은 알고보면 참으로 팔자도 사납게 태어났다. 대궐에서 태어났어도 별로 호사를 누려보지 못했다. 한자라는 문자에게 눌려서 처음부터 눈칫밥을 먹으며 살다가 쫓겨난 거지 왕자처럼 여염집 아낙네의 치마 폭에 싸여 보호를 받으며 겨우 오백 년 가까이 살았다. 어쩌다가 좋은 주인을 만나 출세 길에 오른 것이 오늘의 한글이다. 그러나 빛을 좀 보자마자 또 다시 로마글이라는 세계의 정복자를 만나 작은 판도나마 지키기 위한 싸움을 힘겹게 벌여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중 략>
1945년 8·15해방으로 한글은 다시 소생했지만 국어 교원의 부족, 일본어의 범람, 국어 규범의 부재 등으로 혼란스러웠다. 이에 조선어학회에서는 1946년 `맞춤법통일안`과 〈표준말 모음〉을, 문교부에서는 `외래어 표기법`을 내놓았으나 이렇다할 성과를 보지 못하고 6·25전쟁이 터졌다. 1954년에는 대통령의 유시에 따라 한글간소화와 국문 전용을 정책으로 결정했으나 이의 시행이 강력한 반대에 밀려 국한문 혼용이 지속되었다(→한글파동). 그후 문교부에서 한자어 추방정책을 폈으나 일반에서 수용되지 못했고, 1963년 문교부의 `학교문법통일안`도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1970년 시행된 교과서의 한글전용은 2년 만인 1972년 원상 복귀되어 기초한자 1,800자가 중·고등학교에서 다시 학습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