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의 세기> 일본 역사학 부분에 대한 서평
- 최초 등록일
- 2012.10.14
- 최종 저작일
- 20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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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역사학의 세기>라는 책의 서평 발제문. 책 내용 중 일본 역사학 부분만을 서평한 것이며 근대의 태동기부터 전후에 이르기까지 일본 역사학이 가지고 있었던 근대, 식민주의, 제국주의적 특성을 밝히고 그것을 극복하려 했던 움직임까지 정리하고 있다. 다른 참고논문을 통해 나름의 의견까지 제시하고 있다.
목차
* 들어가며
* 본론
1. 일본식 근대 역사학의 성립.
(1) 랑케적 ‘세계사’의 일본적 전유
1) 국민국가와 식민통치 - 사카구치 다카시
2) 철학화된 랑케 스즈키 시게타카
(2) 일본의 동양사학 시라토리 구라키치
2. 전후 역사학의 한계 - 이시모다 쇼를 중심으로
3. 새로운 길의 모색 - 야스마루 요시오의 ‘민중사상사’, 재일조선인사 연구
(1) 야스마루 요시오의 ‘통속도덕론’
(2) 전후 재일조선인사 연구의 부침
* 나오며
* 참고문헌
본문내용
* 들어가며
“ 동아시아 삼국의 20세기는 가히 ‘역사학의 세기’라고 부를 만하다. 역사를 편찬하여 자국민을 구성하고, 자국민을 동원하여 침략전쟁에 나서거나 침략과 이민족 지배에 저항하는 도식이 지난 100년간 동아시아 삼국을 관통하는 흐름이었다.” 도면회, 총론 : 한국과 일본의 20세기 역사학을 돌아보며 역사학의 세기 - 20세기 한국과 일본의 역사학, 휴머니스트, 2009, 24쪽.
총론에서 도면회가 제기하는 위의 주장은 역사학의 세기를 관통하는 가장 큰 메시지라고 볼 수 있다. 서구 중심적 성격을 가지는 근대 역사학이 동아시아 삼국으로 들어오면서 그 고유한 특징인 자국 중심의 역사관, 민족을 구성해 동원하는 기능에 더해 오리엔탈리즘을 (극복하려고 했던 반식민사학 조차도) 내재화하는데 이용되어졌다. 이는 “19세기 서구 문명의 자유주의적이고 진보적인 이상들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지만,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기회를 제약했고 나아가 억압하기까지 했다”고 말하는 스테판 다나카의 문제의식과도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중 략>
‘전후역사학’이 공유하고 있었던 마르크스주의 사회상이나 변혁론이나 서양 시민사회를 긍정했던 ‘근대주의’자들의 사회관 아래에서 민중은 사회 변혁의 주체라는 측면이 강조되어 ‘인민’이라는 용어가 민중을 대신해 애용되었다. 그리고 ‘인민’은 전후의 사회 분위기와 맞물려 ‘민족’. ‘국민’과 동일시되어 사용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당시의 역사연구는 전위당의 ‘올바름’ 아래 자기의 주체성을 당의 정치방침에 종속시켜버렸다. 1950년대 전반 공산당의 무장투쟁노선에 호응하여 추진된 국민적 역사학 운동은 ‘국민’의 역사의식을 정면으로 대상화하여 그들을 역사의 주체로 삼는 중요한 문제제기를 했지만, 국민을 계몽하고 동원하는 도구로 삼는 혁명방침 아래 추진되고 말았다. 거기에는 변혁 주체로서 ‘인민’이 상정되어도 소수 전위의 지도를 통해 비로소 민중은 각성한다는 주체 형성에 관한 전략론적인 지도자 의식이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다
참고 자료
* 참고문헌
- 강상중, 이경덕․ 임성모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