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의 문학
- 최초 등록일
- 2011.12.28
- 최종 저작일
- 20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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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8세기 한국 한시는 새로운 양상으로 접어들었습니다. 실학파의 대표 인물로서 잘 알려진 다산 정약용은 다방면에서 뛰어난 기량을 보였고 또한 훌륭한 문인이기도 했습니다. 본 레포트는 다산의 삶과 문학을 알아보며 그가 개척했던 새로운 시세계와 사상들을 살펴보고자 쓰여졌습니다.
목차
1. 들어가는 말
2. 다산 정약용의 생애
3. 다산 정약용의 문학론
4. 다산의 시세계
5. 맺음 말
본문내용
Ⅰ. 들어가는 말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1762~1836)은 실학을 집대성한 조선 후기의 학자이다. 그는 실학을 집대성한 학자답게 정치․경제․역사․지리․문학․철학․의학․교육학․군사학․자연과학 등 거의 모든 학문 분야에 걸쳐 방대한 양의 저술을 남겼다. 500여권에 이르는 저술들은 깊고도 넓은 학문 세계로 인해 오늘날까지도 살아 있는 고전이 되고 있다.
그가 살았던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전반의 시기는 조선 봉건사회의 해체기로 봉건적 병폐가 누적되어 그 말기적 현상들이 도처에서 드러나고 있던 시기였다. 특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난 뒤의 사회는 전란으로 고갈된 국가 재정을 메우기 위하여 백성들로부터 과도한 세금을 징수하여야 했고, 이 과정에서 관리들은 온갖 협잡을 자행하며 백성들을 괴롭혔다. 이른바 삼정(三政)의 문란과 이를 둘러싼 지방관들의 부정부패가 바로 그것이다. 그 뿐 아니라 집권층 내부의 권력투쟁이 격화되면서 자체 분열을 하여 그 결과 살아남은 소수의 특권층이 국가의 요직을 독점하게 된다. 이들은 특권을 이용해 광대한 토지를 사유화 하였으며 이에 따라 대부분의 백성들은 무전(無田)농민으로 전락하고 만다.
학문의 경향도 권위주위화 하고 경직화된 주자학(朱子學) 일변도로 흘러 비생산적인 공리공론만 일삼게 되었다. 주자학 자체가 원래 강한 보수성과 체제 유지적 성향을 지니고 있는데다 이 시기에 이르면 절대적인 권위를 구축하고 있어서 주자학 이외의 학문은 용납되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주자학은 집권층의 자기 방어를 위한 도구로 이용돼 주자의 이름으로 정적을 탄압하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학문과 언론의 자유가 박탈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국과 민족이 처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진지하게 노력한 일군의 양심적인 학자들이 있었으니 이들이 바로 실학자들이다. 다산은 이들 중에서도 대표적인 학자였다. 송재소, 한국 한문학의 사상적 지평, 돌배개, 2005, 173p.
본 논의에서는 다산 정약용이 살아왔던 삶과 사상을 살펴보고, 또한 그의 실학사상이 집약되어 있는 한시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
참고 자료
이종찬 외, 『조선후기 한시작가론2』, 이회문화사, 1998.
송재소, 『한국 한문학의 사상적 지평』, 돌배개, 2005.
송재소, 『한국한시작가열전』, 한길사, 2011.
네이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47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