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지배기는 한민족의 반도국가가 독립성을 잃은 시기였다. 이 종속상태는 한민족의 정체성에 위협을 가하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원나라 조정이 고려 지배층보다 많은 경험과 지식의 축적으로 문명수준을 높여주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원나라의 고려에 대한 정책은 당연히 원나라의 이익을 위해 정해졌고, 부정적이 영향을 주었다. 오랫동안 저항한 대가로 왕국을 유지하였지만 원나라의 간섭을 많이 받았다. 원은 일본정벌에 드는 막대한 경비 대부분을 고려에 전가시켰고, 지배기간 내내 여러 가지 명목으로 특산물을 요구하는 경제적 수탈을 자행하였다. 또 특정한 분야에 종사할 사람들을 선발하여 보낼 것을 요구하였다. 남성의 일부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거세되어 궁중의 환관으로 보내졌으며, 여성의 일부는 처․첩, 궁녀, 잡역부 등으로 끌려갔다. 이처럼 고려인은 마치 공물처럼 원나라에 바쳐졌다. 특히 충숙왕 이후 정치적 혼란이 계속되면서 권력쟁탈전에서 패배한 사람들이 원나라로 도망해 들어가 고려를 원의 영토에 편입시키려고 하고 결국 왕이 원나라에 붙잡혀가는 사태를 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원나라와 접촉을 통해 고려의 긍정적 변화도 찾아 볼 수 있다. 첫째로 중국 문명학습에 시차가 사라진 것이다. 10세기 이후 고려의 인쇄술이 첨단 수준으로 발전하여 고려내 문헌 보급이 활발해져 중국 문명 학습이 원활해졌다. 그리고 상당한 규모의 왕실과 귀족층 인원이 원나라 황도에 상주하면서 중국의 문화를 직접 접하게 되었다.
둘째로 중국문명과 고유전통 사이의 관계를 전보다 넓은 시각에서 바라보게 된 것이다. 여기에는 몽골 전통과 중국문명을 병립시킨 원나라 문화정책이 중요한 참고가 되었다. 원나라 멸망 후 전통적 중국왕조라 할 수 있는 명나라와 상대하게 되었을 때 조선의 외교정책, 그리고 세종의 문화정책은 이 시각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참고자료
· 배기찬, 2008년, 『코리아 다시 생존의 기로에 서다』, 위즈덤하우스
· 한국역사연구회, 1997년, 『고려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청년사
· 김기협 2008년 『밖에서 본 한국사 김기협』, 돌베게
· 허만섭 2008년 「‘한국-몽골 국가연합론’ 세미나」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역사스페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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