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평안북도 정주군 갈산면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기행(夔行)이다. 오산고보를 졸업한 뒤 일본 아오야마 학원에서 영어사범을 전공했다. 귀국한 뒤 조선일보에 근무하였으며 이듬해인 1935년, 「정주성」을 발표하면서 등단하였다. 이듬해 시집 『사슴』을 출판한 뒤 조선일보를 사임하고 함흥의 영생고등보통학교 영어 교사로 재임하였으며 1940년 경 만주로 이주한 뒤 안동, 신의주를 거쳐 해방 뒤에야 귀국한다. 남북의 분단 체제가 고착화 된 이후, 재북 작가라는 이유로 우리 문단의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였다. 1988년 해금조치 이후에야 백석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가능해졌는데, 해금시인이라는 이유로 백석을 좌파 문인으로 보는 것은 큰 오류이다. 실상 백석 본인은 여느 작가들과 같이 사상적 신조를 이유로 월북한 인물은 아니다. 그의 출생지에서 확인할 수 있듯 그는 원래 북쪽에 생활 근거를 마련한 인물이었고, 해방 후에도 결코 계급주의적 사조에 물들지 않은 순수 서정 시인이었다. 실제로 그는 1962년, 그의 글이 북한의 이데올로기 노선과 합치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문단의 숙청을 받은 바 있다.
백석에 대한 그간의 논의들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백석의 시가 민속적인 풍물과 향토성 짙은 방언을 활용하여 ‘고향’으로 집약되는 민중의 정서와 세계를 가장 한국적인 시상으로 표현하였다는 점에서는 이견(異見)이 없을 것이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기존의 논의에 입각하여, 몇몇 작품을 통해 그의 시세계를 탐구해 보도록 한다.
참고자료
· 박윤우, 「백석 시에 있어서 고향의식과 근대성의 관계 양상 연구」
· 류순태, 「백석 시에 나타난 ‘고향 의식’의 아이러니 연구」
· 김정수, 「백석 시의 전통적 성격과 그 의미」
· 송기한, 「백석 시의 고향 공강화 양식 연구」
· 이경수, 「백석 시의 낭만성과 동양적 상상력」
· 허만욱, 「백석의 시세계와 이미지 고찰」
· 이숭원, 『백석을 만나다』, 태학사,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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