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면마견조사1
- 최초 등록일
- 2011.12.09
- 최종 저작일
- 20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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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나주면마견조사
목차
Ⅰ. 머리말
1.연구 목적
2.연구 방법
Ⅱ. 다시면 샛골나이와 목화
Ⅲ. 나주 비단, 잠사주식회사
Ⅳ. 천연염색
Ⅴ. 맺음말
본문내용
1. 연구 목적
전남은 목화가 잘 자라는 데 좋은 따뜻한 기후를 지니고 있다. 문익점이 처음 목화를 가지고 와 재배했다는 경상남도 산청 또한 따뜻한 기후가 특징이다. 목화를 잘 재배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기후조건이 있겠지만 전남 지역에서 목화의 재배 기후 조건이 좋아 재배가 활발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남, 곡성, 광주 등 전남 각 지역에서 목화를 재배했다. 견도 마찬가지로 재배를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마는 전남 보다는 우리나라 윗 지방에서 많이 재배하였다.
영산포는 1975년까지 배가 드나들던 포구였다. 고려시대부터 조선 중종 9년까지 조창이 있어서 주면 일대의 조세와 물산, 상인들이 모여들었다. 1897년 목포항이 개항된 뒤 목포항을 통해 들어온 외래 문물이 영산강 뱃길을 따라 영산포를 거쳐 전남 내륙으로 흘러들었다. 1900년대만 해도 인구가 3,000여명에 이르던 영산포는 1914년 대전과 목포를 잇는 호남선이 놓일 때 영산포역이 생기면서 영산포는 일제의 조선수탈 창구의 하나가 되었다.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 수출입화물의 집산 시장으로 발달하였다. 일본을 주 대상으로 무역이 이루어졌다. 수출품은 미곡, 면화, 누에고치, 잡곡, 새끼, 가마니, 죽제품이었고, 수출고는 4백2만4천1백84원에 달했다. 수입은 비료, 밤, 면사포, 염장, 석유, 성냥, 주류, 일용식료품, 잡화, 농구류, 건축자재, 철기류등 3백82만3천9백19원에 달했다. 특히 영산포는 미곡 집산지로서 도정업이 유명(13개소)하였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새로운 시가지가 형성된 영산포 본정통 거리는 당시 최고의 거리로 영라관이란 요정 건물과 정미소 건물 등은 지금까지도 남아있다.
나주의 특산물로는 ‘나주 샛골나이’라고 불리는 결고운 무명베와 나주반(차 그릇), 나주 배가 유명하다. 쌀과 면화와 누에고치가 많이 나서 삼백 지방이라고 불려왔다. 나주지역은 조공을 바칠 때 현재도 유명한 배를 비롯하여 셋골나이를 조공으로 바칠 정도로 나주의 면 재배와 직조 기술을 발달해 있었다. 일제가 들어오면서 강제적인 육지면 재배로 토종 면화가 줄어들었지만 셋골나이의 직조는 변화하지 않았다.
참고 자료
네이버 뉴스 자료
http://olv.moazine.com/
오방색 - (다섯 가지 방향을 상징하는 색으로 동쪽은 청색, 서쪽은 흰색, 남쪽은 적색, 북쪽은 흑색, 가운데는 황색이다.)
http://olv.moazine.com/rviewer/index.asp < 나주 장인을 찾아 - 정관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