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이 많았던 항저우에는 북송 때 사단에서 곱고 부드러운 시를 썼던 완약파 집성자이자 격률의 창시자인 청진거사 주방언을 키워냈다. 또한 "매화를 아내 삼고 학으로 자식 삼았던 시인" 임포, 명나라 말엽 아름다운 소품을 썼던 수필가 장대, 청나라때 시의 해방과 성령을 주장했던 시인이자 이론가 원매, 근대 개량주의 기수로서 사회비평시를 썼던 시인사상가 공자진 역시 모두 항저우 사람이다.
항저우에는 문인을 기념하기 위한 시설이나 유적이 많지 않으나 벼슬이나 머물렀던 사람들
이 남긴 치적과 문적이 많이 있다. 백낙천과 소동파가 쌍벽을 이루는 예인데 그들은 항저우
에서 관리로 지내면서 백낙천은 시후호 동서로 1Km 누워 있고 소동파는 남북으로 2.8Km누워있다. 복사꽃과 버드나무가 늘어선 방죽을 백제라 하는데 백낙천이 항저우를 떠난 뒤 그를 기리기 위해 백사제를 백제라 부르는 것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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