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1968혁명으로 본 프랑스의 자유 문화와 현재 우리의 모습
I. 프랑스 국민들의 자유를 향한 투쟁
역사시대(歷史時代) 이래로 대중은 항상 권력에 의한 착취의 대상이었으며, 권력이 만들어 낸 권위(權威)라는 손바닥 위에서 살아왔다. 이집트 시대에도, 로마 시대에도, 황제나 파라오의 절대권력은 신 외에는 도전할 수 없는 권위였다. 또한 중세 암흑기에는 사제가 최고의 권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절대왕정 시대에는 왕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고 민중들에게 권력을 행사했다.
목차
I. 프랑스 국민들의 자유를 향한 투쟁
II. 1968년 프랑스
1. 1968혁명의 시대적 배경.
2. 1968혁명의 전개
3. 실패한 혁명
4. 1968혁명이 문화에 미친 영향
III. 1968 혁명으로 비춰 본 우리의 모습
IV. 합의와 동의
본문내용
I. 프랑스 국민들의 자유를 향한 투쟁
역사시대(歷史時代) 이래로 대중은 항상 권력에 의한 착취의 대상이었으며, 권력이 만들어 낸 권위(權威)라는 손바닥 위에서 살아왔다. 이집트 시대에도, 로마 시대에도, 황제나 파라오의 절대권력은 신 외에는 도전할 수 없는 권위였다. 또한 중세 암흑기에는 사제가 최고의 권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절대왕정 시대에는 왕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고 민중들에게 권력을 행사했다.
프랑스 혁명(Revolution of 1789, 1789년)은 그 동안 헤게모니(hegemony)를 쥐고있던 권력에 도전한 대중들의 첫 발걸음이다. 봉건제 폐지, 즉 앙시앵 레짐(ancien regime)의 종말을 고하고 공화정을 통해 법치주의에 입각한 자유민주주의가 싹트기 시작했으며, 무엇보다 인민들이 스스로 권력을 행사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비록 나폴레옹이 황제에 즉위 하면서 당초의 의미는 상실했지만, 권력으로부터의 ‘자유(自由, Liberté)’를 알아버린 대중은 더 이상 착취의 대상이 아니었다. 이후 발생한 7월 혁명(Révolution de Juillet, 1830년)에서 볼 수 있듯이 프랑스 시민들은 끊임없이 자유를 갈구 했다.
이후에도 프랑스와 유럽에서는 자유를 향한 끊임없는 혁명과 투쟁이 일어났다. 그 결과로 자유민주주의가 사회전반에 뿌리 깊게 내릴 수 있었으며, 조금이라도 자신의 자유를 침해하는 일에 있어서는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1968년 프랑스에서는 조금 이상한 혁명이 일어났다. 기성세대들이 이해할 수 없는 말 그대로 이상한 혁명이다. 그 동안 발생한 정치 혁명과는 전혀 다른 젊은 세대가 주축이 되었고, 주동자도 없었으며, 무엇보다도 자유 그 자체에 대한 갈망으로 발생한 문화 혁명인 것이다.
II. 1968년 프랑스
1. 1968혁명의 시대적 배경.
당시 프랑스는 식민지인 베트남을 포기하고, 알제리 독립전쟁에 휩쓸리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드골이 다시 돌아오게 된다. 드골은 1961년 핵무기를 개발하고 1966년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를 탈퇴하는 등 연합을 하기보다는 프랑스만의 독자노선을 걸어갔으며, 부의 분배가 아닌 국력 신장에 주력해 나름대로의 성과를 이루었다. 주변국의 상황을 둘러보면 독일은 2차 대전의 패전국으로서 동서로 양분되고, 냉전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참고 자료
리하르트 파버, 에어하르트 슈텔팅 著, 정병기 譯,『상상력에 권력을? 1968혁명의 평가』, 메이데이, 2008.
김진혁 PD, EBS 지식채널 e『1968(68혁명) 1부, 2부』, EBS, 2007.
위키피디아,
http://ko.wikipedia.org/wiki/5%EC%9B%94_%ED%98%81%EB%AA%85, 『5월 혁명』.
건기연, 전국과학기술노조,
http://go.jinbo.net/commune/view.php?board=kstu-10&id=94,
『젊잖은 프랑스 파업문화(?)....』, 진보넷(http://www.jinbo.net/), 1995.
킹크랩,
http://k.daum.net/qna/openknowledge/view.html?category_id=KG&qid=2ceFZ&q=68%C7%F5%B8%ED+%B9%AE%C8%AD&srchid=NKS2ceFZ, 『68혁명, 그 긍정성과 한계』, 다음지식(http://k.daum.net),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