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공민왕의 북벌 경영
2. 대립되는 두 성격
3. 이성계의 반란
4. 이상이냐 현실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5. 아, 아까워라.
6. 고려의 일편단심
7. 그리고 나
본문내용
1. 공민왕의 북벌 경영
공민왕이 볼모로 가 있던 몽고로부터 돌아와 임금이 되자, 몽고에 있으면서 그 나라의 힘이 떨어진 것을 알았다. 공민왕은 돌아와서 원나라의 풍속을 벗어버리고 압록강 서쪽의 팔참과 쌍성 여러 고을을 다시 빼앗아 북벌의 기세를 올렸다.
공민왕이 나라 땅을 찾으려는 운동이 첫 번째 성공에 뒤이어 그대로 진행이 되었으면, 한국 역사는 새로워졌을 것이다. 나아가 동양 전체의 역사도 다른 길로 나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고려는 당시 방만한 외교를 하고 있었다. 쓰러져 가는 원나라와 일어나는 명나라 사이에서 어느 한 쪽으로 갈피를 잡지 못하고 형편을 보아 이롭도록 해보자는 방법만을 쓰고 있었다.
이 때 한 사람이 있었다. 모두들 자기의 몸을 사리느라 바쁜데 조정에 홀로 서서 북벌론을 주장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최영 장군이다. 그는 일찍이 원나라의 요청을 받아 중국에 싸우러 나가 내란의 평정을 돕는 동안에 원의 실력과 천하대세를 실제로 경험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북벌을 주장했다. 그러나 온 조정의 사람 중에 그 의견을 따를 만큼 용기를 가진 사람은 없었다.
그러는 동안에 시국은 바짝 다가왔다. 만주에 손을 뻗친 명나라는 이제는 기어코 우리 강계에다 철령위를 세우고 요동에서 철령에 이르는 사이에 70참을 둔다는 것이었다. 최영을 그 것을 보고 가만있을 수가 없었다. 그의 올곧고 불같은 성격은 그로 하여금 북벌을 감행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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