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과 홍콩의 뉴웨이브 영화와 그 감독들에 대하여 조사한 내용입니다.
- 최초 등록일
- 2011.08.27
- 최종 저작일
- 20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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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대만과 홍콩의 뉴웨이브 영화와 그 감독들에 대하여 조사한 내용입니다.
목차
1. 대만 영화
2. 대만 감독
3. 홍콩 영화
4. 홍콩 감독
본문내용
: 대만과 홍콩의 뉴 웨이브 움직이기 보였던 시기는 세계 영화사에서 중요한 영화사 흐름의 공통적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이 때 에는, 정치, 사회적 격동기 시점이었다. 따라서 기존 질서의 비판적 기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영화언어, 형식을 실험하고 감행하기에 이른다.
항상 작가주의적 성향이 강한 감독들이 중심으로 형성되었는데 그 대표 감독들을 알아보자.
허우샤오엔 (1947~)
: 우상과 악마라는 이분법적 인물 구도를 통해 문화의 정체성 재정립에 기여하였다. 펑구이에서 온 소년 1983, 둥둥의 여름 방학 1985, 바람 속의 먼지 1986, 나일 강의 딸 1987, 비정성시 1989, 인형극 인생 1993, 선남선녀 1995, 우울한 낙원 1996. 등이 그의 대표작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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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본토에서 태어났으나 태어난 다음해에 가족 모두가 타이완으로 옮겨갔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다음 병역을 마치고, 1969년 국립예술전문학교 연극·영화과에 들어가 배우로서의 꿈을 키웠다. 학교에 다니면서 리싱[李行] 감독 밑에서 촬영소의 일을 돕기도 하였다. 학교를 졸업한 뒤 배우로의 길이 여의치 않자 전자계산기 세일즈맨 등 여러 가지 일을 전전하였다. 이때부터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하여 1980년에 직접 시나리오를 쓴 《귀여운 여인》으로 감독으로 데뷔하였다.
그뒤에도 《유쾌한 바람》(1981), 《강가의 푸르른 들》(1982) 등 직접 시나리오를 쓴 작품을 발표하였다. 《강가의 푸르른 들》은 직접 시나리오를 쓴 마지막 작품으로 이전의 연애물에서 탈피한 것이었다. 당시 타이완 영화계는 타이완의 정체성을 그려 내지 못하고 할리우드를 따르려는 영화계의 그릇된 풍토 속에서 올바른 정체성을 추구하려는 뉴시네마 운동이 일어나고 있었으며, 호우샤오셴은 뉴시네마의 선두주자로 성장하였다. 1983년 쩡좡샹[曾壯祥]·완주엔[萬仁]과 함께 작업한 《샌드위치맨》을 발표하였는데, 이는 초기 타이완 뉴 웨이브 감독들의 지향을 보여준다.
참고 자료
호우샤오셴 [侯孝賢(후효현) ] | 네이버 백과사전
[타이완 연구] June Yip(2001) - 국가건설: 타이완 역사와 허우샤오시엔|작성자 신현준
왕자웨이 [王家衛(왕가위) ] | 네이버 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