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 민속 박물관을 다녀와서
- 최초 등록일
- 2011.08.13
- 최종 저작일
- 20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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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사람들이 가는 방향 그대로 따라 들어가니 ‘제 1 전시관, 한민족 생활사’ 라고 팻말이 나오고, 벽면을 있는 연대기에 따라 도자기나 태극기 그림이 전시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의 역사의 큰 흐름을 간략하게 말해주는 듯 했다. 한 바퀴를 둘러보니 1전시관은 한민족 생활사라는 말대로 구석기, 청동기,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일제강점기 그리고 현대 시대까지 각 시대의 대표할 물건을 전시해둔 곳이었다. 그 중 한참을 쳐다본 것이 있었는데, 바로 천년의 역사를 가진 신라의 경주 시가지를 축소모형으로 만들어 놓은 전시물이었다. 진짜 옛날 경주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듯 집 하나하나를 잘 만들어 놓았다. 한 가지 놀라운 것은 그 당시에도 집의 배치가 일직선의 길을 따라 아주 체계적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한눈에 본 경주는 상당히 깔끔한 이미지였다. 교수님께서 수업시간에 경주일대는 그 자체가 다 유적지라고 한 것이 기억이 났다. 그 만큼 곳곳에 옛날 흔적이 남아있다는 말이다. 내 생각에는 아직까지 옛날 집과 같은 유적지가 남아있는 이유 중 하나가 따로 도로를 뚫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만큼 그 당시에 도로망을 중심으로 건물 배치를 잘 한 것 같았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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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이것이 바로 진정한 대학교육 인 듯 싶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친구들은 얼른 나가자고 저 앞으로 걸어가는 데, 나는 아는 것들을 눈으로 확인하는 즐거움 때문에 발걸음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너무나 재미있고, 신이 났다. 수업시간에 배운 것 말고도 조선시대 윤리를 강조한 정려와 과거제도 알려주는 두루마리, 문관과 무관의 모습 등 선조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삶을 살아갔는지 알 수 있었다. 전시관을 거의 다 돌 쯤 돼서야 화려한 어떤 것이 눈에 들어왔다. 직감적으로 상여임을 알 수 있었다. 예상외로 상여는 상당히 화려했다. 조금 전에 봤던 신부 가마보다도 훨씬 화려하고 크기도 컸다. 원래 상여가 이런 것인지 아니면 이 상여만 높은 분이 썼던 것이기 때문에 화려한지 꼭 다시 찾아 봐야지 하고 마음을 먹었다. 집에 와서 찾아보니 원래 상여가 굉장히 화려하고, 몇 십 명이 들 만큼 큰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아마도 마지막 가시는 길이 억울하지 말라고 거창하게 꾸며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교수님께서 사람이 못 들어 갈 만큼 정말 작다고 하셨던 혼백을 담는 가마인 ‘영여’를 못 봤다는 것이다. 박물관을 오기 전부터 태항아리와 영여를 꼭 보자고 생각했던 나였기에 솔직히 아쉬운 마음으로 국립민속박물관을 돌아 나왔다.
“이제 무엇을 사줄 것이냐, 얼마나 있냐?” 라고 말하는 친구들과 고기 집으로 향했다. 친구들은 잘 모르겠지만 나에게 있어서 오늘은 정말 큰 수확을 한 날이었다. 평소 유물의 유자도 모르던 나였기에 오늘 발걸음을 떼지 못할 정도로 유물을 쳐다보던 내 모습이 상당히 대견스러웠다. 그리고 충분히 우리 조상님들의 업적들은 그런 관심을 받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무엇하나 그냥 하는 법이 없었다. 모든 것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고, 그 이유는 자연을 거스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이런 뜻 깊은 기회를 주신 이선희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면서 국립민속박물관의 소감문을 마친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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