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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 강의 발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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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호남지방 마한계 주거지연구사 검토
마한에 대한 기존의 연구중에서 역사학계에서 어느 정도 일치된 견해는 우선 마한은 삼한 중에서도 가장 이른시기에 중서남부지역, 즉 충청·전라지역에 형성되었고, 그 시점은 기원전 2세기초 고조선 준왕 남분 이전에 해당하며, 소멸시기는 4세기 중후반대 백제의 근초고왕의 남정과 관련되고, 백제의 성장에 따라 경기지역에서부터, 충청지역, 전라지역 군으로 백제에 편입된다는 점에서는 어느정도 일치된 견해를 보이고 있으나 마한의 상한과 하한의 문제에 들어가면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 않다.
마한의 성립시기에 대한 견해로는 기원전 3~2세기 중엽설(임영진 1995), 기원전 3세기설(노중국 1987; 박순발 1998), 기원전 3~2세기설(이현혜 1984), 기원전 2세기설(김양옥 1990), 기원전 1세기설(권오영)등의 견해로 연구자마다 다양하다. 하한에 대한 견해로 근초고왕의 남정과 관려하여 4세기 후반으로 보는 역사학계의 통설(노중국 1987)에 대해 최근에 고고학계에선 영산강유역에서 5세기말까지 대형옹관 고분이 잔존하기 때문에 5세기말까지 내려봐야 한다는 견해(임영진 1995, 1997)가 제시 되고 있다. 상한과 하한에 대한 문제는 앞으로 많은 논의를 거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주거지의 연구는 90년대부터 대규모의 개발로 인해 대규모의 발굴조사가 이루어져 취락단위의 발굴조사가 되어 마을을 중심으로 하는 취락고고학의 연구로 변화되었다. 호남지방의 마한계 주거지에 대한 고고학적 연구는 최근들어 활발히 이루어 지고 있다. 기존에는 일부의 보고서에 의해서 산발적으로 언급만 있었고 체계적인 논의가 이루어 지지 못한 실정이었다. 80년대 말까지 호남지역에서 발견된 마한계 취락 유적은 남원 세전리와 순천의 대곡리 유적정도로 미미하였으나 90년대 들어서 그 수가 증가 하였고 특히 서해안 고속도로 건설구간 내의 조사가 이루어 지면서 많은 수의 유적이 보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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