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지리 답사 보고서
- 최초 등록일
- 2011.06.09
- 최종 저작일
- 20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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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답사 보고서
- 향토지리조사 및 실습 -
in 청주
AM 8:10 중앙공원 도착
공원에 도착하여 교수님께 향토지리를 처음 시작하면서 향토란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향토란 각자 살고 있는 곳으로 우리는 청주에서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이곳이 곧 향토가 된다고 하셨다. 청주는 조선시대까지 청주목으로 최상급 지방 행정 중심지였다고 한다. 따라서 청주 내에는 방어를 위한 읍성이 있었는데 지금은 볼 수 없다고 한다. 우리의 답사는 이 읍성의 4문의 터를 찾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현재 청주 시가지의 확대로 인해 성벽을 허물었다고 한다. 과거 성안이 도시의 핵심부분이지만 모든 주민이 성안에서 살았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전쟁이 나면 성의 안쪽으로 피난을 갔다고 한다.
성문은 보통 4개로 동, 서, 남, 북에 있었으며 서울처럼 큰 도시의 경우 내부에도 4개의 문이 더 있었다고 한다. 이때 문의 이름에는 유교의 이름인 인, 의, 예, 지, 신을 붙이게 되었는데 흥인지문, 숭례문, 동의문, 홍지문, 보신각 등이 그 예이다. 또한 5방색인 청, 백, 주, 현, 황을 붙이기도 하는데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이다. 청주는 북문이 현무문이었다.
본래 도성계획에 있어서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라는 천원지방의 사상을 받아들여서 성을 사각형으로 만들지만 우리나라는 산이 많기 때문에 네모 반듯하지 못하다. 전조후시, 좌묘우사로 앞은 조정, 뒤는 시장(우리나라는 산 때문에 모두 앞), 왼쪽은 문묘(성균관, 향교), 오른쪽은 사직단(종묘)를 배치한다고 한다. 또한 여단이 있는데 이는 억울하게 죽은 귀신을 달래기 위한 곳으로 북쪽에 위치한다. 1묘 3단이 꼭 있어야 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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