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 마지막 황제 - 의종 숭정제
- 최초 등록일
- 2011.05.24
- 최종 저작일
- 20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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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명나라 마지막 황제 의종 숭정제의 생애를 정리한 리포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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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의종 숭정제(毅宗 崇禎帝, 生沒 1611~1644, 在位 1628~1644)
■ 숭정제의 생애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의종 숭정제의 이름은 주유검(朱由檢)으로 1610년(萬曆 38) 12월 24일 광종(光宗) 태창제(泰昌帝)의 다섯째 아들로, 현비(賢妃) 유씨(劉氏)의 몸에서 태어났다. 요즘 기록에는 1611년(萬曆 39) 2월 16일 태어났다고 하는데, 이는 양력과 음력의 차이로 인해 생긴 것으로 보인다.
의종은 묘호(廟號)이고, 숭정제란 그 치세가 숭정이라는 연호를 가졌던 데 근거한 호칭이다. 처음에는 남명정권의 황제였던 홍광제(弘光帝)가 묘호를 사종(思宗)으로 추증하였으나 곧 의종(毅宗)으로 개호(改號)했고 융무제(隆武帝) 때에는 따로 묘호를 위종(威宗)으로 올렸다. 이후 남명정권을 제압하고 중국 대륙을 통일한 청나라의 순치제(順治帝)는 다시금 숭정제에게 회종(懷宗)의 묘호와 장렬민황제(莊烈愍皇帝)라는 시호를 올렸으나 현재는 일반적으로 의종이라는 묘호가 널리 쓰인다. 순치제가 이렇게 한 것은 청나라가 명나라를 뒤이은 정통왕조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한족(漢族)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한 것이었다.
숭정제는 후사(後嗣)가 없던 이복형 희종(熙宗) 천계제(天啓帝)의 뒤를 이어 1627년(天啓 7) 8월 24일 17세의 나이로 즉위하였다. 태창제에게는 7명의 아들이 있었지만 천계제와 숭정제를 제외하고는 모두 요절하였다. 천계제 또한 아들이 3명 있었지만 모두 요절하였기 때문에 천계제는 숭정제에게 황위를 넘겨주는 수밖에 없었다.
숭정제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엇갈린다. 아까운 군주라는 긍정론 이면에는 망국(亡國)을 자초했다는 혹평이 존재하는데, 물론 둘 다 근거가 있다.
숭정제의 치적
숭정제는 능력도 있고 중흥의 영주가 되려고 나름 노력을 하였다. 숭정제가 즉위할 당시 명나라는 연일 내우외환(內憂外患)에 시달리는 상태였다. 그는 먼저 황제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하기 위해 천계제의 총애를 받아 국정의 전횡했던 환관 위충현(魏忠賢) 세력을 제거하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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