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의 선전정책과 영화
- 최초 등록일
- 2011.03.27
- 최종 저작일
- 2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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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독재자 중에 영화를 좋아한 사람이 많다. 레닌, 스탈린,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그랬고, 페론과 차우셰스쿠, 북한의 김정일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영화를 정치에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정책을 폈다. 폭군 네로는 한편의 시를 짓기 위해 로마 시가지를 불태웠고, 희대의 독재자 히틀러는 젊은 시절 미술을 공부한 사람이다.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도 영화에 미쳐 `치네치타 촬영소`를 만들었다. 유명한 영화 「벤허」도 이 촬영소를 빌려서 만든 작품이다.
목차
◉들어가기 - 독재자와 영화
1. 히틀러는 누구인가?
2. 히틀러의 선전 정책
3. 히틀러의 영화 산업
4. 패전과 히틀러 영화 산업의 여파
5. 결론
본문내용
들어가기 - 독재자와 영화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독재자 중에 영화를 좋아한 사람이 많다. 레닌, 스탈린,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그랬고, 페론과 차우셰스쿠, 북한의 김정일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영화를 정치에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정책을 폈다. 폭군 네로는 한편의 시를 짓기 위해 로마 시가지를 불태웠고, 희대의 독재자 히틀러는 젊은 시절 미술을 공부한 사람이다.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도 영화에 미쳐 `치네치타 촬영소`를 만들었다. 유명한 영화 「벤허」도 이 촬영소를 빌려서 만든 작품이다.
독재자들은 영화를 정권 유지에 활용하기 위해 노력했다. 독일의 독재자인 히틀러도 마찬가지였다. 히틀러는 문학과 영화, 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을 선전하기 위해 힘썼고 특히 스스로 영화를 좋아하여 괴벨스 [Paul Joseph Goebbels, 1897.10.29~1945.5.1]
독일 나치스 정권의 선전장관. 국회의원, 당 선전부장으로 새 선전수단 구사, 교묘한 선동정치로, 1930년대 당세 확장에 크게 기여했다. 국민계발선전장관 등으로 문화면을 통제, 국민을 전쟁에 동원했다.
괴벨스와 함께 독일 영화가 나치 군대의 전위로서 세계를 정복할 임무를 부여받았다고 선언했다.
나는 독재자와 영화의 관계 속에 히틀러가 장려한 독일의 영화 산업과 그 성과를 알아보고 나치 시대의 영화산업이 어떤 방향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조사해 보았다.
1. 히틀러 [Adolf Hitler, 1889.4.20~1945.4.30]
독일의 정치가, 나치스의 지도자. 제1차세계대전의 독일 패전 후 독일노동자당에 가입하여 웅변을 통한 당의 선동가로서 정치활동에 전념하였다. 민중의 지지를 기반으로 일당독재체제를 확립, 독재자가 된 그는 경제를 재건하고 군비를 확장하여 제2차세계대전을 일으켰으나 결국 패전하여 자살하였다. 반(反)유대주의적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히틀러는 누구인가?
참고 자료
♦세계영화사
-음향의 도입에서 새로운 물결들까지(1926~1960s), 시각과 언어, 톰슨 ㆍ 보드웰
♦옥스퍼드 세계영화사(진정한 의미에서의 세계 영화사), 열린책들
♦히틀러, 한길사, 홍사중
♦독일 제 3국의 선전정책, 혜안, 데이비드 웰시
♦신상옥의 북한영화 이야기, 조선일보
♦<영상>의지의 승리(Triumph of the Will),1934
The Life of Adolf Hitler (아돌프 히틀러의 인생)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독일영화 - 두산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