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정복왕조 요와 금의 한인통치 및 대송관계.
목차
目 次
Ⅰ. 머리말
Ⅱ. 征服王朝論
Ⅲ. 遼·金의 漢人統治
1) 遼의 漢人統治
2) 金의 漢人統治
Ⅳ. 遼·金의 對宋관계
Ⅴ. 맺음말
본문내용
Ⅰ. 들어가며
文治主義라는 표면 하에 중국 역사상 어느 시기보다 외침에 많이 시달리고 그만큼 북방민족의 왕조들이 득세했던 시기가 宋代였다. 그 시기 각기 契丹과 女眞에 의해 건국된 遼와 金은 군사력으로 송을 압도하여 맹약을 통해 경제적인 이득을 취하고 화북지역의 상당 부분을 지배하는 등 그 시대를 주도하였다. 하지만 華夷論이라는 기본적인 사고가 깔려있는 당시 중국인들에게는 굴욕적인 대외관계로 인식될 수 있었고, 그러한 바탕에서 문화를 강조하며 한족의 문화가 이민족의 문화보다 우수하여 이민족의 왕조는 결과적으로 한족의 문화에 압도당해 민족적 색채를 잃고 멸망하였다는 역사적 인식이 생겨났다고 생각된다. 때문에 보통 낙후되고 야만적인 유목민의 문화가 선진문화를 지닌 한족을 군사적으로 공격하다가 후에 결국 漢和되었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또한 당시의 국제질서를 놓고 한족왕조인 송이 중심이 된 조공관계였다는 인식 역시 이민족 왕조에 대한 폄하어린 시선일 것이다. 때문에 “이민족의 중국왕조 인식”이라는 과제물 주제에 맞추어 송대 북방왕조인 요와 금에 대해 다루기로 하였다. 특히 이민족 왕조가 한화되어 사라졌다는 주장에 반한 칼 비트포겔의 정복왕조론과 요·금의 이원적인 한족통치, 그리고 다원적 국제질서를 유지한 바탕이었던 이들의 대송관계에 대해 서술하면서 당시의 국제질서와 이들의 활약, 그리고 통치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중 략>
단순히 요와 금 또한 중국사의 일부로 생각되고 있지만 비트포겔이 주창한 정복왕조론과 같은 새로운 주장은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기반이라고 생각된다. 중국의 중화민족이라는 개념으로 중국적, 한족적인 관점으로 중국사를 바라보면 중국의 왕조는 한없이 위대해보이며 이민족과 이민족왕조들은 결국 한족화 되어가는 미약한 역사로 보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관점에서 중국사를 바라봐서, 특히 중국과 가장 많이 부딪혔던 북방민족의 관점에서 중국사를 바라보면 또 다른 시각으로 역사를 인식할 수 있겠다는 생각과 그러한 시각의 필요성을 느끼게 한 본 과제였다고 생각한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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