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대왕 고려 광종
- 최초 등록일
- 2011.01.13
- 최종 저작일
- 20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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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대성대왕 광종에 대한 서술이니다.
목차
1. 고려 광종
2. 연호 광덕을 선포
3. 폭풍전야의 태평성대
4. 개혁의 신호탄, 노비안검법
5. 과거 도입으로 전제왕권 강화
6. 대숙청 시대의 개막
7. 호족과 공신을 숙청
8. 광종의 인재등용 그리고 개혁기반세력
본문내용
1. 고려 광종
왕건의 맏아들은 혜종 왕무, 둘째 아들은 요절한 태자 왕태, 셋째 아들은 정종 왕요이다. 하지만 광종이 넷째 아들인지는 불분명하다. 광종은 친형제만 따져도 위로 형 둘과 동생 둘이 있다. 배다른 형제까지 많았으므로 치열한 경쟁의식 속에서 성장하였고, 이러한 환경 속에서 나름대로 생존 철학을 터득하며 도전 의지를 키워나갔다. 장자인 왕무는 도량이 크고 호방하였고, 왕요는 겉으로는 날카롭고 나서기를 좋아하였지만 속으로는 유약하였다. 반면 광종 왕소는 겉으로는 부드럽고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강하고 도전적이었다.
광종은 잘생긴 얼굴을 부드럽게 하여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비상한 머리로 냉정하게 형세를 판단하여 미래를 설계하였다. 은인자중하며 때를 기다리는 것은 태조 왕건을 쏙 빼 닮았다고 할 수 있다. 친형인 왕요를 부추겨 혜종을 제거한 후 왕요까지 물리치고 승리를 거머쥐게 된 것이다.
2. 연호 광덕을 선포
광종은 즉위한 다음해에 연호를 선포하고 대내는 물론 대외에 황제를 칭하였다. 혜종, 정종의 시대가 가고 자신의 치세가 시작되었음을 알리고 정통성을 확고히 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정관정요》를 읽은 직후 연호를 반포한 것으로 보아, 그 속에는 강력한 당 태종과 같은 군주가 되겠다는 뜻이 담겨 있었다.
광종은 단순히 연호를 사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공식적으로 대외에 황제를 칭하였다. 즉위 당시 스물다섯 살로 어린 티가 남아 있던 광종은 그 동안 호족과 장군들을 이용하고 그 자신이 이요당하면서 단련되어 어느덧 ‘칭제건원’을 단행할 만큼 능숙한 정치가로 성장해 있었다.
광종의 ‘칭제건원’은 자신을 옹립한 호족, 장군들의 품에서 벗어나 자기 목소리를 우렁차게 내지른 것이자, 자신이 수많은 형제들과 확실히 다른 최고 권위를 지닌 존재임을 과시한 것이었다.
참고 자료
1.김창현,『5백년의 리더십 광종의 제국』, 푸른역사, 2006
2.박영규,『한권으로 읽는 고려왕조실록』, 들녘,1996,pp.20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