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통신사 총정리
- 최초 등록일
- 2010.12.21
- 최종 저작일
- 2010.11
- 18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3,000원
소개글
조선통신사의 정의부터 연대별 활동까지 쭉 정리해놓은 레포트입니다.
목차
1. 조선통신사의 정의
2. 조선 통신사의 역사
3. 조선통신사의 파견절차
4. 조선통신사의 여행 행로
본문내용
조선 건국된 후 제 1회 통신사는, 이미 전술한 바와 같이 1413년 태종 13년에 박분이 선발되어 출발하였으나 도중에 발병(發病) 하여 부산에서 중단되었다.
제 2회 통신사는 1429년 세종 11년 6월에 편성되었다. 이들은 아시카가 요시노리 장군의 취임을 축하하고 서거한 요시모치를 문상(問喪)하는 것이 목적이다. 동시에 서국(西國) 여러 호족(豪族)들, 특히 오우치 모치요에게는 정중한 서한과 많은 예물을 보냈는데, 그것은 통신사 왕복의 안전과 왜구의 금지를 요청하기 위함이었다. 이것이 조선이 일본을 최초로 방문한 통신사였다.
그들은 일본에 관하여 가능한 한 상세하게 관찰하였다. 귀국 후의 보고를 보면, 막부의 대우는 형편없었으며, 아사카가 정권이 매우 약하다는 것, 그리고 금, 은, 동, 철의 생산이 자유로워 그것으로 돈을 주조하고 여행의 편익과 농업의 납세에도 이용하고 있다는 것 등 주로 경제 교통에 대하여 높이 평가하였다. 또 왜구에게 붙잡혀갔던 농어민이 일본으로부터 도망쳐 조선으로 돌아오고 있었기 때문에 송환에 대한 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다는 것 등도 상계 하였다. 또 요시노리가 중국에게 조공할 의도가 있다는 것도 세종에게 보고되었다.
제 3회 통신사(1439년 12월)의 주된 목적은 일본과의 교린 관계를 거듭 확인하고, 계속되던 왜구 침입의 금지를 요청하는 동시에 서일본지역의 여러 호족들이 보내오는 사자(使者)의 수를 줄이는 문제를 장군에게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제 4회 통신사를 수행한 서장관 신숙주는 그의 견문과 조사를 토대로 <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를 저술했다. 이는 그 후 대일 정책의 입안과 통신사행의 교과서가 되었다. 조선후기에 있었던 통신사의 관찰은 모두 이 영향을 받았다.
특히 해동제국기 서문 첫머리의 1절에는 조선 대일 정책의 기본을 보여주는 것이 있는데 이를 보면 “무릇 교린(交隣) 빙문(聘問)하고 수속(殊俗)을 무접(無接) 하는 것은 반드시 그 정을 알고 그런 다음에 예를 다해야 한다.
참고 자료
* 미야케 히데토시, 『조선통신사와 일본』(지성의 샘, 1996)
*『한국민족문화 대 백과 사전 23권』(한국정신문화연구원)
* 손승철, 『조선시대 한일 관계사 연구 [개정판]』(景仁文化社, 2006)
* 신성순, 『조선 통신사』 (中央日報社, 1994)
*『조선통신사 이야기』, 나카오 히로시, 한울, 2005
*『통신사와 문화전파』, 임동권, 민속원,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