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토목공학자․물리학자. 앙굴렘 출생. 공병학교에서 역학(力學)이론․공학기술을 공부하였으며, 1761년 공병대에 들어가 요새․운하․항만의 건설 등을 지도하였다. 74~82년까지 프랑스령 서인도제도에서 근무하였다. 귀국 뒤부터 교량건설기술 등과 관련해 마찰 연구를 추진하여 G. 아몽통의 성과를 계승한 마찰에 관한 쿨롱의 법칙을 명백하게 하였다. 평면의 상대운동에 의한 마찰뿐만 아니라 회전의 마찰과 피보트 축받이의 마찰에 관해서도 연구하였고, 놋쇠․철 등의 가는 금속선에 추를 매달아 비틀었을 때의 복원력(復原力)에 의한 진동을 이용하는 비틀림탄성(彈性)에 대해서도 연구하였다. 그가 전기․자기(磁氣)에 관한 쿨롱 법칙을 실험적으로 제시할 때 이 장치(비틀림저울)와 연구성과가 이용되었다. 우선 같은 부호의 전하반발력(척력)으로 비틀림저울의 금속선을 비틀고 그 금속선의 복원력과 전하 사이 거리의 관계를 조사함으로써 85년 전하 사이의 척력이 거리의 2배에 반비례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러나 서로 다른 부호의 전하(인력)인 경우에는 비틀림저울의 정력학적(靜力學的) 균형을 이용한 이 방법으로는 효과적으로 실험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인력으로 회전운동을 일으키고 그 감쇠도(減衰度;진동 지속시간)에서 인력의 크기를 구하는 동력학적 방법을 채용하여 87년 전기․자기의 인력․척력이 모두 거리의 2배에 반비례함을 실험적으로 나타내는 데 성공하였다. 다만 전하․자하(磁荷)의 인력․척력이 역제곱의 법칙에 따른다는 것을 쿨롱 이전에 J. 프리스틀리․H. 캐번디시도 지녔던 생각이므로 쿨롱의 독자성은 그 역제곱의 법칙을 정확한 정량적(定量的) 실험으로 나타낸 점에 있다. 또한 이론적 측면에서도 전기․자기에 대하여 원격작용설(遠隔作用設)을 취하여 그 무렵 프랑스에서 지배적이었던 데카르트류의 와동론(渦動論)과 대립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정량적 연구를 기초로 S.D. 푸아송․K.F. 가우스․G. 그린 등이 포텐셜론이라는 수학적 이론을 발전시켰음을 알 수 있듯이 정량적 정전자기학(靜電磁氣學) 발전의 공적은 높이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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