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랑 (1903 ~ 1950)
본명은 允植. 시의 본도가 서정에 놓여져야 하며 그것은 언어의 섬세한 조탁에 의해 미학적 수준으로 상승되어야 함을 강조함으로써 이 땅의 시를 생경한 관념이나 도식적인 이데올로기의 수준에서 예술적인 차원으로 상승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마련했던 시인으로 평가됨. 1903년 전라남도 강진에서 5백석 지주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남. 14세 되던 1916년 상경하여 YMCA에서 영어를 배우다가 이듬해에 휘문의숙에 입학함. 그가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대략 이 무렵(1917-9)인 듯함. 3·1운동 때 그는 독립운동에 가담했다가 6개월간 옥고를 치룸. 그러나 이 경험이 뒷날의 생애나 시작생활에 어떤 방식으로 살아 움직이는지 확인할 만한 단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음. 1920년 도일하여 청산학원 중등부와 영문과에 다니다가 관동대지진으로 중도 귀국한 1923년 이후 1925년 재혼하기까지 기간동안 “신흥 사회주의적 분위기에 젖어 문화운동에 전력을 다했다”고 하나 현재로서는 입증할만한 아무런 근거도 없고 개연성도 희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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