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촌 이기영의 작품세계와 문학관
- 최초 등록일
- 2010.11.04
- 최종 저작일
- 20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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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민촌 이기영의 작품세계와 문학관에 관한 레포트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민촌의 작품세계
2. 문학관
1) 신경향 문학
2) 카프문학
3. 구체적 작품을 통한 이기영의 문학 - ‘고향’
1)시대배경
2)줄거리
3)작품해설
4)작품의 구조
5)작품의 한계점
Ⅲ. 결론
본문내용
Ⅰ. 서론
이기영은 1895년 5월 29일 충남 아산군 배방면 회룡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이민창이 가계를 돌보지 않아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일본 도쿄에 있는 세이소쿠 영어 학교를 중퇴하였다. 1905년 봄 장티푸스의 유행으로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1908년 한양 조 씨 집안의 ‘조병기’와 결혼한다. 호는 민촌(民村)으로 《오빠의 비밀편지》가 《개벽(開闢)》에 당선되면서 문단에 등단했다.
1925년 이기영은 그의 동료인 조명희, 최서혜, 송영과 더불어 ‘카프’ 창건사업에 참가하였다. ‘카프’의 창건은 조선 문학 예술발전에 전환점이 될 뿐만 아니라 민촌 이기영의 창작생활과 세계관 발전에 있어서도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데, 그는 ‘카프’에 가담한 이후, 줄곧 경향문학의 대표적 작가로서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였다.
1830년대 들어서면서 일제의 조선에 대한 탄압과 약탈의 더욱 강화되면서 식민지 조국의 현실은 점점 더 일제자본주의의 확대됨에 따라 일본에 경제적으로 예속 되어갔다. 일제는 1831년 여름에 이기영을 포함한 제1차 카프 지도부에 대한 총 검거로 구속하였다가 집행유예로 풀어준다.
1832년 초순에 출옥한 후 민촌은 단편 [묘양자] [부역]의 창작을 끝마치고 감옥에서 구상한 [서화]를 집필한다. 1834년의 제 2차 카프 검거 시에는 형을 받고 2년여의 옥살이를 경험한다. 그는 이 시기에 조선 농민생활에 대한 대서사시적 작품 [고향]을 구상한다.
해방 후에 월북한 그는《땅》, 《두만강》 등을 발표하여 북한 최고의 작가로 대접받게 된다. 그리고 북한에서 많은 작가들이 숙청당했을 때도 살아남아 계속적인 작품 활동을 하면서 순탄한 생활을 한다. 민촌이 월북문인들에 대한 3차례에 걸친 김일성의 숙청작업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식민지 시대의 경력 및 조선 문학예술 총동맹 위원장과 조국전선 중앙위원을 역임하면서 변함없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참고 자료
조남현, 「이야기꾼. 리얼리즘. 이데올로그」, 건국대학교출판부, 2002
이선옥, 「이기영 여성소설 연구」, 국학자료원, 2002
권유, 「민촌 이기영의 작가세계」, 국학자료원, 2002
정호웅, 「李箕永」, 새미,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