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의 역사
- 최초 등록일
- 2010.11.03
- 최종 저작일
- 20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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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시대부터 현대까지의 한의학의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매우 자세하고 상세한 자료를 바탕으로 서술하였습니다.
목차
■ 조선 초기의 한의학
■ 조선 중기의 한의학과 철학
■ 허준(許浚)의「동의보감(東醫寶鑑)」
■ 후기의 한의학과 서양의학의 도입
본문내용
■ 조선 초기의 한의학
조선 초기는 고려부터 이어져 내려온 의학기술과 제도를 재정비하고 발전시켜 조선 의학의 기반을 다진 시기였다. 특히 세종(1418-1450)에서 성종(1469-1494)에 이르는 70년은 정치와 문화뿐만 아니라 의학에서도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어 조선의학의 기초가 완성된 시기라 할 수 있다. 조선은 건국 초부터 본격적인 유교국가를 표방했다. 따라서 초기 조선 왕조는 유교이념을 실천하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서 의학의 기틀을 세우고 정리하는 작업을 시작하였다. 전 시대부터 누적된 의학지식에 힘입어 조선 초기에는 국가사업으로 많은 의학서들이 출판되었다. 또 중국 의학의 수입보다 국내 의학의 발전에 치중하여 값비싼 중국 약재를 수입하기보다는 국내 약재를 개발하는 데 더 주력했다. 조선 초기의 대표적인 의학서로는 세종조의「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과「의방유취(醫方類聚)」가 있다. 이미 태조 7년(1398)에 김희선과 권중화 등이 그간의 의료 경험과 종래의 의약서 등을 참고로 하여「향약제생집성방(鄕藥濟生集成方)」30권을 간행하여서 이것이「향약집성방」의 토대가 되었다.
초기 국가의 안정을 위해서는 백성들의 질환 예방과 치료가 필수적이었다. 때문에 국내의학의 발전은 중요한 과제였으며 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종은 향약(鄕藥)에 깊은 관심을 가져 향약연구의 절정을 맞이하였다. 향약은 중국 약재인 당약에 상대되는 말로 국내에서 산출되는 약재를 의미한다. 당시 의학 발전에 있어 중요한 요소는 무엇보다도 약재의 개발이었다. 따라서 향약의 중흥은 조선왕조의 중요한 국책사업 중 하나였다. 세종은 고려 후반부터 시작한 우리나라 향약의 연구를 집대성하게 하였고 명나라로부터 수입한 의방서(醫方書)와 이들의 언역서(諺譯書)를 저술하게 하였다. 또한 국내에서 재배되는 약재의 약효를 감별하기 위해 의약 전문가들을 중국에 파견하여 약에 대한 지식을 넓혔다. 기록에 따르면 세종은 1421년 10월에 약재에 정통한 황자후라는 사람을 명나라에 보내 우리 땅에서 생산되지 않는 당약들을 구해오게 하였으며, 1423년에는 노중례 등을 명나라에 보내 우리 약재와 중국 약재의 효능을 연구하도록 하게 하였다 .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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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네이버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