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상,중농 학파 실학학자 중심의 자료
- 최초 등록일
- 2010.10.24
- 최종 저작일
- 20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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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사의 이해 발표했던 자료 입니다.
목차
1. 우리조가 실학을 주제로 선정한 이유
2. 당시 실학이 등장하게 된 사회적 배경
3. 실학의 갈래
4. 대표적 실학자
- 박지원
- 박제가
- 홍대용
5. 실학의 의의와 한계
본문내용
박세당 : 색경이라는 농서 저술
박지원 : 농기구, 농토 경작 등을 연구
유형원 : 반계수록을 지음 이익 : 성호사설 지음
정약용 : 토지와 세금 제도의 개혁 주장
(2)상공업에 관한 연구 (우리조가 주로 조사하는 곳)
18세기 후반에는 농업뿐만 아니라, 상공업의 진흥과 기술의 혁신을 주장하는 실학자가 나타났다. 청나라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부국강병과 이용후생에 힘쓰자고 주장하였으므로 이들을 이용후생 학파 또는 북학파 라고도 한다.
상공업 중심 개혁론의 선구자는 18세기 전반의 유수원이었다. 그는 우서를 저술하여 상공업의 진흥과 기술의 혁신을 강조하고, 사농공상의 직업평등과 전문화를 주장하였다.
북학파의 실학사상은 18세기 후반 홍대용, 박지원, 박제가 등에 의하여 크게 발전하였다.
홍대용은 청에 왕래하면서 얻은 경험을 토대로 기술의 혁신과 문벌 제도의 철폐, 그리고 성리학의 극복이 부국강병의 근본이라고 강조하였으며, 중국이 세계중심이라는 생각을 비판하였다.
박지원은 청에 다녀와 열하일기를 저술하고 상공업의 진흥을 강조하면서 수레와 선박의 이용, 화폐 유통의 필요성 등을 주장하고, 양반 문벌제도의 비생산성을 비판하였다. 농업에서도 영농 방법의 혁신, 상업적 농업의 장려, 수리 시설의 확충 등을 통하여 농업 생산력을 높이는 데에 관심을 기울였다.
박지원의 실학 사상은 그의 제자 박제가에 의하여 더욱 확충되었다. 박제가는 청에 다녀온 후 북학의를 저술하여 청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것을 제창하였다. 그는 상공업의 발달, 청과의 통상 강화, 수레와 선박의 이용등을 역설하였다. 또, 생산과 소비와의 관계를 우물물에 비유하면서 생산을 자극하기 위해서는 절약보다 소비를 권장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