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수 많은 종교가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교회만이 예수님의 재림의 날까지 이 세상 구석 구석에서 계속될 것이다.
로마는 예루살렘과 안디옥 다음 가는 그리스도교 세계의 제 3의 중심지였다. 로마는 기독교를 핍박하였으나 결국 4세기에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 ; 274-337) 황제가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채택하면서 상황은 급변하여 로마의 주 종교가 되었다. 이러한 가운데 3세기 중엽 이후 로마제국은 줄곧 국경 밖의 북방 민족들로 말미암아 시달려 왔으며, 날이 갈수록 국방문제는 힘이 들었다. 계속된 압력으로 결국 서로마 제국의 문명은 거의 완전하게 파괴되었으며 일반적으로 암흑 시대라고 알려진, 전진과 반격, 파괴와 혼돈의 긴 기간이 뒤따르게 되었다. 이후 A.D. 1000년은 분계점의 성격을 띤 해였다. 이제 개략적으로나마 그리스도교회를 이룩한 유럽은 암흑 시대의 최악의 공포로부터 등을 돌리고 있었으며 다음 4세기 여의 기간에 걸쳐 여행가 무역, 군사적 모험, 예술, 건축, 새로운 국어들의 발전,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학 사상의 체계 속에 나타나게 될 내적 탄력성을 축적하고 있었다. A.D. 1200년에 이르러 유럽은 비록 부분적이지만 거의 전체가 기독교의 복음을 받아 들였다.
1492년과 1497년에 서구의 콜럼부스와 바스코 다 가마의 대륙 발견으로 아직까지 전혀 알고 있지 못했던 신세계들이 하나 하나 신비의 베일이 벗겨지게 되었다. 드디어 서구와 아시아를 연결시키는 육상과 해상무역로를 지배해 온 무슬림 세력의 배후를 돌아 들어가는 아시아의 뒷문이 발견된 것이다. 유럽의 군사력과 정치 및 경제력은 전세계에 그 힘을 미치려 하였다. 유럽인들은 오직 유럽문명만이 그 이름에 타당한 가치를 가진 문명이란 생각을 하면서 우수한 국민이라고 하는 괴이한 콤플렉스를 키우기 시작하였다. 유럽의 팽창에 대동하여 또는 그에 앞서서 교회의 팽창이 이루어졌다.
16세기와 17세기를 무엇보다도 뚜렷하게 구별시키는 차이점은 선교부의 조직과, 또 일선 선교부와 유럽의 본부와의 관계에 나타난 급격한 변화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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