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교육과 국학연구(수업용자료)
- 최초 등록일
- 2010.09.12
- 최종 저작일
- 20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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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 근현대사 수업용자료입니다.
수업목표부터 기본 내용, 사료, 사진, 형성평가 등 수업에 필요한 모든 내용을 실었습니다. 많은 도움이 되실겁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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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생각열기> 단재 신채호에 대해...
1. 가계와 생애
단재 신채호선생은 고령신씨로 조선조에 영의정까지 지낸 신숙주에게는 18대 손이 된다.
단재의 아버지는 가난한 시골 선비이며, 외가인 권씨촌에서 부인 밀양박씨와의 사이에서 서른 두 살이 되어 둘째아들 신채호를 낳았다.
단재는 16세가 되던 해에 집안에서 정해준 풍양조씨와 결혼을 하여 첫아들 관일을 낳았으나 우유에 체해 아들을 잃고 난 후 부인과 이혼을 한다.
중국망명 중이던 1920년 단재는 박자혜와 두 번째 결혼을 하여 그 사이에 수범과 두범 두 아들을 낳는다. 박자혜는 숙명여학교 기예과(2회)를 졸업하고, 1919년 3․1운동 당시 서울 조선총독부 부속병원(현 적십자병원)에 간호사로 근무하면서 소위 `간우회사건`을 주동한 인물이었다. 1936년 단재가 여순감옥에서 서거한 이후 둘째 아들 두범은 영양실조로 사망하였고, 1944년 박자혜도 병사한다.
장남 수범은 단재의 국적취득을 위하여 노력하여 1986년 대한민국 국적을 회복케 하였으며, 단재의 업적을 정리하는 작업에 온힘을 기울이다 1991년 5월 사망하였다.
할아버지는 마을에서 서당을 열고 글을 가르치며 한편으로는 단재에게 본격적으로 한학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단재선생의 재능은 이때부터 발휘하기 시작하였는데, 아홉 살에 중국역사인 `통감`을 통달하였고, 이후 삼국지와 수호지 등을 거침없이 읽어나갔다.
단재선생은 열살무렵 한시에도 특출한 재능을 보이기 시작, 19세에 성균관에 입교하게 된다.
2. 주요 활동
단재 신채호는 역사학자였지만, 언론인으로 또 독립운동가로 활동한 인물이다. 그의 초창기 사관은 소수의 영웅이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영웅주의사관`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 후 중국에서 망명생활을 하면서 고대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게 되었고, 따라서 고대문화를 폭 넓게 이해하게 되면서 영웅주의 사관을 극복하고 민중을 역사의 주체로 인식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후에는 역사의 주체인 민중이 혁명을 주도하여 항일투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에 폭력적 항일운동과 무정부주의 투쟁을 전개하게 되었던 것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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