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준 『해방 전후』에 드러난 ‘근대에 대한 문제의식’과 주제의식
- 최초 등록일
- 2010.07.28
- 최종 저작일
- 20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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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태준에 대해서는 이미 3학년 1학기 고전소설강독 시간의 과제물 ‘황진이’에서 공부한 적이 있어 낯설지 않았다. 이태준이란 인물은 해방 전엔 주로 순수 문학에 기대어 구인회에 가담하는 등 인물과 성격의 차분한 내관적 묘사를 하는 등 그다지 사회주의적 색채를 띠지 않았지만, 해방 후 그의 태도는 달라지게 된다. 사회주의 계열에 합류하면서 민중운동을 이끌며 결국 월북까지 하게 된다. 그가 월북한 이유는 아직 구체적으로 밝혀 지진 않았지만, 『해방 전후』를 보면 그 이유를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다. 그 만큼 『해방 전후』는 중요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해방 전후』를 통해서 이태준의 근대에 대한 문제의식과 주제의식에 대해 밝히고자 한다.
목차
서 론····························
본 론····························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서론
이태준에 대해서는 이미 3학년 1학기 고전소설강독 시간의 과제물 ‘황진이’에서 공부한 적이 있어 낯설지 않았다. 이태준이란 인물은 해방 전엔 주로 순수 문학에 기대어 구인회에 가담하는 등 인물과 성격의 차분한 내관적 묘사를 하는 등 그다지 사회주의적 색채를 띠지 않았지만, 해방 후 그의 태도는 달라지게 된다. 사회주의 계열에 합류하면서 민중운동을 이끌며 결국 월북까지 하게 된다. 그가 월북한 이유는 아직 구체적으로 밝혀 지진 않았지만, 『해방 전후』를 보면 그 이유를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다. 그 만큼 『해방 전후』는 중요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해방 전후』를 통해서 이태준의 근대에 대한 문제의식과 주제의식에 대해 밝히고자 한다.
본론
1. 이태준
호는 상허(常虛)·상허당주인(尙虛堂主人). 1921년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중퇴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조치대학[上智大學] 예과에서 공부했다. 귀국한 뒤로는 이화여자전문학교 강사, 〈중외일보〉·〈조선중앙일보〉 기자로도 활동했다. 1933년 구인회 회원으로 가입했고, 1930년말에는 〈문장〉의 소설 추천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최태응·곽하신·임옥인 등을 배출했다. 8·15해방 후 정치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임화·김남천 등과 조선문학건설본부를 조직하여 활동하다 월북했다.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 부위원장, 국가학위수여위원회 문학분과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다. 1947년 방소문화사절단의 일원으로 소련기행에 나섰고, 6·25전쟁 때는 북한의 종군작가로 참가했다. 1953년 남조선노동당 인물들과 함께 숙청될 뻔했으나 가까스로 제외되었고, 1955년 소련파가 숙청될 때 가혹한 비판을 받고 숙청되었다. 함경남도 노동신문사 교정원으로 일했다고 하나 확실하지 않다. 1953년 숙청이 끝난 가을 자강도 산간 협동농장에서 막노동을 하다 1960년대 초에 병사했다는 증언도 있다.
참고 자료
이태준. 『 20세기 한국소설 06 이태준 박태원』. 경기도 : 창비 , 200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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