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역사의 비극 - 비시 프랑스
- 최초 등록일
- 2010.07.22
- 최종 저작일
- 20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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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프랑스 역사 상 유래 없는 시기, 즉 이민족에게 나라 전체가 점령당한 시기 당시에 세워졌던 나치 독일의 괴뢰정권이였던 비시 프랑스 정부 (1942 - 1945)에 대한 레포트입니다.
목차
1. 2차대전의 발발과 독일의 프랑스 침공
2. 비시 프랑스의 수립과 독일과의 휴전협정
3. 비시 프랑스의 경제
4. 비시 프랑스의 정치
5. 레지스탕스 운동과 프랑스의 해발
6. 비시 프랑스의 몰락과 청산
7. 비시 프랑스에 대한 두 관점
본문내용
비시 프랑스의 몰락과 청산
비시 프랑스는 프랑스의 해방과 함께 막을 내렸다. 비시 정권의 주요 인사들과 대독협력자들은 판결을 받았다. 주요 인사들 중 페탱과 라발, 다르낭은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라발과 다르낭만 사형당하고, 페탱은 1차 대전 당시의 공적을 참작하여 종신형에 처해졌다. 자크 드 베르농빌(Jacques de Bernonville;레지스탕스 운동 탄압, 독일의 유태인 학살에 협력)와 같은 몇몇 인사들은 망명의 길에 올랐다. 망명의 길에 오른 인사들 중 일부는 암살되었고, 후에 인권유린 혐의로 재판을 받기도 하였다.
비시 프랑스에 대한 두 관점
비시 정권의 총리였던 라발은 “비시 프랑스는 공산주의의 영향에서 프랑스를 지켰다.” 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비시 정권이 독일에 협력함으로서 프랑스 전역이 전쟁의 도가니로 빠지는 것을 막았다는 주장도 있다. (전혀 대독협력을 하지 않은 소련의 경우에는 소련 서쪽의 많은 도시들이 초토화되었음.) 이러한 관점에서는 비시 프랑스가 프랑스를 보호하는 일종의 “방패”의 역할을 했다고 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시각은 비시 프랑스를 “독일의 괴뢰정부”로 보고 있다. 외세를 막지 못하고 협력하여 정부를 수립하였기 때문이고, 프랑스를 지키려는 의지가 부족했다는 것이다. 또한 프랑스 정부는 비시 정권에 대해 ‘프랑스 공화국’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프랑스국’이라는 이름을 채택한, 외국의 영향을 받은 배신자들이 수립한 불법 정부”라는 공식적인 관점을 고수하고 있다.
참고 자료
「혁명과 반동의 프랑스사」로저 프라이스, 김경근 ․ 서이자 역, 개마고원, 2001
「라이프 세계 2차대전사 - 특공대」, 한국일보-타임라이프, 1989
「그림으로 보는 프랑스의 역사」, 리비에르 저, 주명철 역, 소나무, 1992
「누구를 위한 협력인가-비시 프랑스와 민족혁명」, 박지현 저, 책세상, 2004
Vichy France, [http://en.wikipedia.org/wiki/Vichy_France], Wikipedia, 2006.10.9
Military history of France during World War II,[http://en.wikipedia.org/wiki/Military_history_of_France_during_World_War_II], Wikipedia, 2006.10.9
French Resistance, [http://en.wikipedia.org/wiki/French_Resistance], Wikipedia, 2006.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