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15세기 양반관료제의 모순
1) 훈구정치 비판과 새로운 모색
2) 사회·경제적 모순의 심화
3. 사림세력의 등장
1) 사림의 실체
2) 사림세력의 성장 기반
3) 사림세력의 진출과 士禍
4. 사림세력의 활동
1) 道學政治의 추구
2) 향촌질서 재편운동
3) 경제개혁의 추진
5. 結論
본문내용
1. 緖論
조선 건국을 주도하여 정권을 독점하고 있던 勳舊勢力은 15세기에 이르러 양반관료제의 모순을 야기했다. 그들은 권력남용과 경제력 확대를 통해 고리대적 私債(사채)의 이용, 役의 부담에서 벗어나려는 良民의 投託, 伴人(반인)과 丘史(구사)의 과다한 점유, 양민을 강제로 賤人으로 삼고 자기 소유가 아닌 공사노비를 사역하는 등의 방식으로 경제력의 확대를 꾀하였다. 또 그들은 정치권력을 독점·남용함으로써 점차 權貴化의 길을 걸었다. 이에 수반하여 科田法의 붕괴와 지주제의 발달, 상품의 유통과 貢納制의 모순 심화, 軍役制度의 붕괴, 국제교역의 발달 및 마찰 등 새로운 사회경제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이러한 급격한 변화 속에서 새로운 흐름을 타고 정치세력으로 등장한 것이 士林派였다. 사림파는 재지중소지주에서 성장을 거듭하여 점차 훈구파를 대신할 정치세력으로 자리잡아 갔으며, 그들은 훈구파 지배하에서 야기된 각종 사회경제적 모순을 해결하고 유교적 이상사회를 건설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道學政治의 이념을 바탕으로 향촌질서를 재편하는 한편 書院의 건립, 性理學의 보급, 경제개혁 등 다양하고 구체적인 개혁을 추진하였다. 이로써 훈구파와 사림파의 정치사회적 갈등구도 속에서 사림파가 훈구파의 대체세력으로 등장하여 마침내 사림정치를 실현하게 되었다.
2. 15세기 양반관료제의 모순
1) 훈구정치 비판과 새로운 모색
① 勳舊政治의 비판
조선이 개창한 지 한 세기가 지난 16세기, 중앙의 양반 관료들은 ‘勳舊派(훈구파)’와 ‘士林派’로 나뉘어 심각한 갈등을 겪었다. 훈구파는 개국 공신에서 8차례에 걸친 공신 책봉을 거쳐 형성된 세력에 뿌리를 두었는데, 계유정난 이후 세조가 등장하면서 책봉한 공신과 관련된 훈신과 척신을 가리킨다. 이들은 부국강병의 현실주의 노선을 지키면서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하였고, 흔히 훈구라 칭하기도 한다. 사림파는 요순 3대의 이상적인 도덕 정치나 왕도정치의 구현을 통해 훈구 대신들이 자행한 여러 폐단을 고치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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