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사 - 왕건의 훈요십조
- 최초 등록일
- 2010.06.12
- 최종 저작일
- 20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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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중세사 중 고려왕조의 시조 왕건과 훈요십조에 대한 내용입니다. 왕건이 유훈으로 남긴 훈요십조가 실제로는 조작되어 후손들의 정치적 배척 근거로 이용되었음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목차
Ⅰ. 들어가는 말 … 1
Ⅱ. 훈요십조가 의심을 받는 논거
1. 전달자 박술희 … 2
2. 지방 차별의 항목 … 3
3. 태조 왕건 때의 상황과의 불일치 … 3
4. 제 8항의 문제점
(1) 경위에 대한 의혹 … 4
(2) 역사적 입증 … 8
(3) 배산역수의 땅 … 12
(4) 차현 이남 공주강의 새로운 위치 설정 … 15
Ⅲ. 나오는 말 … 21
본문내용
Ⅰ. 들어가는 말
오늘날 우리에게 애물처럼 달려있는 문제 중의 하나를 꼽으라면 지역감정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선거 때마다 붉어지는 지역갈등의 문제는 우리 현대 사회에서 큰 장애가 되어왔다. 지역 감정은 동서고금의 어느 곳에서나 있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우리의 경우 그 골이 매우 깊은 듯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것은 ‘호남기피’였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오랜 쟁점이 되고 있는 이 문제의 원천적인 근거로 ‘왕건의 훈요십조’ 을 거론해왔다.
고려 태조 왕건이 죽기 한 달 전에 그의 후왕들에게 남겼다는 10가지 훈계 , 훈요십조 ! 훈요십조는 열 개 항목으로 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 이렇다.
하나, 불교를 중요시하라.
둘, 도선이 추첨하여 개창한 이외의 사찰 창건을 경계하라.
셋, 적자가 왕통을 잇는 것이 상례이나 형제 계승도 할 수 있다.
넷, 당의 풍속 문물제도를 따르되 거란의 풍속을 본받지 말라.
다섯, 서경을 중시하라.
여섯, 연등, 팔관을 중시하라.
일곱, 부역과 세금을 가볍게 하고 상벌을 분명히 하라.
여덟, 차현 이남과 공주강 밖의 인재 등용을 피하라.
아홉, 관직과 복록을 신중히 하라. 열, 경사를 중시하라.
끝으로 이 십훈은 중심장지하여 보감으로 삼으라는 단서가 붙어있다. 왕건은 이 열 항목의 교훈을 그가 죽기 한 달 전에 대광 박술희를 통하여 다음 왕에게 전수했다 한다.
하지만 그 중 민족 화합과 통일의 정치 이념을 펴려고 했던 태조 왕건의 통치 이념과 상반되는 8조항은 이해할 수 없는 의문점이 발견된다. 여러 문헌으로 미루어 볼 때 왕건이 정말로 훈요십조를 남겼는지, 그것이 꼭 10조였는지, 그리고 그 8조에 호남기피의 조항이 들어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그것이다.
문제의 이 훈요십조는 그 후 수많은 학자들에 의하여 무비판적으로 수용되며 재생산되었고 드디어는 망국적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원인을 제공하기에 이르렀다. 다만 최근들어 훈요십조의 제작, 전달 관정에 많은 의문이 제기되어 그 지닐 여부에 대한 분석, 비판이 여러 분야에서 행해지고 있다.
그럼 여기에서 이 훈요십조가 조작되지 않았을까? 하는 문제를 제기해 보려고 한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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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일,『다시 쓰는 택리지1(경기, 충청 편)』, 휴머니스트, 2004
신복룡,『한국사 새로 보기』, 풀빛, 2001.
설성경,「국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 위한 모색 : 지역·국가 갈등의 원천 해체를 향한 두 가지 주제」, 동방학지,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