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통일 20년을 돌아보며
- 최초 등록일
- 2010.04.17
- 최종 저작일
- 20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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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몇 해 만에 한국을 다시 방문하게 되니 기쁘다. 지난번 방문 때 필자는 당시 헬무트 콜 총리 산하 총리실에서 신연방주(구동독) 실무팀장을 맡아 직접적 통일업무에 참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후에도 통일과 분단의 결과극복 문제는 필자에게 지속적 과제로 남아 한시도 필자를 놓아주지 않았다. 이 점에서 나는 독일분단 시기 한국과 독일에 많은 격려와 연대감을 보여준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
한국인은 한 나라가 분단의 운명을 짊어져야 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경험으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물론, 한국인의 경우, 독일인에 비해 분단의 아픔을 더욱 뼈아프게 겪어왔던 것이 사실이다. 독일인의 경우, 어렵기는 했지만 서독에서 동독으로의 여행이 가능하기는 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40년간의 분단이 지속되는 동안 전화통화와 서신교환도 있었다. 하지만 독일에서도 분단 후 시간이 흐르면서 동서독간의 공동소속감이 약화될 위험이 점차 커졌고, 이는 장기적으로 볼 때 동서통일을 불가능하게 만들 수도 있는 커다란 위험요소였다.
독일분단은 세계 2차대전의 산물이었다. 2차대전의 승전국(서방연합군과 소련)은 이미 종전 이전, 독일 패전 시 독일 국토를 공동으로 관리, 지배할 것을 합의하였다. 그러나 종전 후, 승전 4개국 간에 분열이 생겼고, 여기에 냉전이 시작되면서 독일 내 서방 점령지역과 소련 점령지역은 대조적 발전 양상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서방 점령지역에서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기반을 둔 독일연방공화국이 탄생하였고, 소련 점령지역에서는 중앙집권적 계획경제에 바탕을 둔 사회주의 독재체제가 성립되었다. 이로서 매우 짧은 시기에 서독과 동독은 국가, 경제, 사회적으로 극적인 차이를 보이게 된 것이다.
독일의 첫 총리는 기독민주당(CDU)의 콘라드 아데나워(Konrad Adenauer)였다. 그는 미국과 소련 사이의 반목양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깨닫고, 독일의 분단이 장기 지속되리라는 것을 예견했다. 당시의 분단 상황은 독일 혼자만의 힘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아데나워는 서독의 정치, 경제, 나아가 군사정책을 서방 민주주의 공동체의 틀 안에서 운용하는 통합정책을 표방했다. 이를 통해 최소한 서독만이라도 소련의 팽창정책이 희생되는 것을 막고자 했던 것이다. 반면, 동유럽의 많은 국가들은 2차대전 종전 후, 이러한 소련의 제국주의 정책의 희생양이 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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