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티노플 신조
- 최초 등록일
- 2010.03.25
- 최종 저작일
- 20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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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 신조는 381년 콘스탄티노플에서 모인 에큐메니칼 공회에서 150명의 감독들이 채택한 신조로 알려져 있고, 승인을 받은 것은 451년 칼케돈 에큐메니칼회의라고 한다. 초대교회의 예배의식에서 사용되어 세례예식 때에 고백되었고 또 성만찬 예식의 고백으로서도 6세기부터 사용되다가 칼케돈 공회 후에는 모든 신조들 가운데서 가장 널리 사용되었다.
목차
개요
작성배경
니케아 신조와의 비교
참고 문헌
본문내용
작성배경
삼위일체에 관한 논쟁은 니케아 회의에서 아리우스주의를 정죄함으로 일단락되었지만 논쟁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고 그후 50여년 동안 계속되었다. 325년의 니케아 신조와 381년의 콘스탄티노플 신조 사이에 362년의 알렉산드리아(Alexandria)회의에서 고대교회의 삼위일체론의 초석을 놓은 중요한 항목이 결정되는데 기본도식은 “하나의 본질(우시아)과 세 실체(휘포스타시스)”였다. 이 기본 도식에서 “휘포스타시스”라는 희랍어는 개체를 뜻하는 말인데 곧 하나님은 세 분이시라는 말이었다.
일곱째, 콘스탄티노플 신조는 "성경대로"라는 귀절을 삽입함으로써 진리의 절대적인 기준으로서 전통보다도 성경의 권위를 더욱 높혔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아울러 그 내용에 있어서도 콘스탄티노플 신조는 교회들의 "신앙의 규율"의 내용을 니케아 신조보다 더욱 많이 반영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아리우스파에 대한 저주문은 콘스탄티노플 신조에 와서 삭제되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는 또한 "유일하고, 거룩하고, 보편적이고, 사도적인 교회"라는 문구 속에서 교회에 대한 신앙 고백을 첨가시켰으며, 구원의 길로서 "죄 사함을 통한 세례"를, 그리고 내세와 과련하여 "죽은 자들의 부활" 그리고 `영원한 생명에의 소망`을 추가하였다. 이로써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는 여러 이단들을 정죄하였다. 과격한 아리우스파로서 성부와 성자의 "상이본질"(Hetero-Ousios) 혹은 "부동"(Anomoios)을 주장한 유독시우스(Eudoxius)와 아에티우스(Aetius), 유노미우스(Eunomius)를 정죄하였다. 그리고 성령의 위격을 부인하고 "성령은 우주 전체에 분사된 신적 에너지"에 불과하다고
참고 자료
-Henry Chadwick, The Early Church. [초대교회사]. 서울:기독교문서선교회, 1987.
-Justo L. Gonzalez, The Story of Christianity. [초대교회사]. 서영일 역. 서울:은성, 1987.
-Williston Walker, A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4th edition. [기독교회사] 제4판. 송인설 역. 서울: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3.